낯익은 거리의 언젠가는 잊혀질 풍경을 담다.
서울 거리는 두가지의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한가지는 도보로 바라보는 느리고 낮은 관점이고, 또 하나는 차로 이동하며 빠르고 다소 멀리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물론 거리의 대부분은 마치 시간이 지나도 그리 바뀌지 않을 것 같이 보이지만, 차를 타고 지나며 보는 거리는 일상이 거듭될 수록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변화를 더하며 언젠가는 잊혀진 풍경으로 남을 숙명을 지녔다.
도심을 둘러싼 산이 있는 도시 서울은 풍수지리 상 적지라는 판단 하에 조선의 건국과 함께 수도가 된 역사를 지녔다. 하지만 일제시대와 6.26 전쟁을 겪으며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 오던 역사의 흔적들은 거의 모두 변형되거나 포화의 재로 변해버려 복원을 통해 원형을 되살려 오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복원의 손길을 거쳐 소개된 역사적 유적 중에는 서울 성곽을 꼽을 수 있겠다.
서울 성곽은 조선 초에 수도 방어를 위하여 쌓은 도성으로 건설 당시에는 전국에서 무려 11만 8천여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동원된 대역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태조 이성계는 이 서울 성곽의 건설을 정도전에게 맡겼는데, 서울 성곽의 출입문 역할을 하는 4대문과 4소문을 설계하고 그 사이를 이어 석벽을 쌓아 외형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4대문은 동쪽의 흥인지문(현재의 동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현재의 남대문), 북쪽의 숙청문을 말한다. 또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하는데 최근 광희문이 복원되어 공원으로 조성되기도 했다.
서울성곽을 복원하면서 가장 큰 진통을 겪었던 곳이 바로 현재의 동대문 성곽공원 터에 자리잡았던 동대문 교회의 옛터이다. 교단의 반대를 겪었던 이 터는 현재 교회가 철거되고 너른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도심 속 도로변에 흔치 않은 녹지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중앙 부처들의 지방 이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정부청사는 서울과 지방을 포함해 총 5 곳으로 분산되어 있다. 서울을 비롯 과천과 대전, 세종시, 지방 합동청사 등이 그 곳들에 해당된다.
이 중 1970년도에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는 정부서울청사는 세종로에서도 사장 경복궁 쪽에 근접하여 지어진 고층 건축물이다.
지난 광복절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형 태극기를 청사 중앙에 설치하여 설명이 필요 없는 정부의 대표적 청사 건물로서의 이미지를 그대로 나타내기도 했다.
현재의 정부서울청사의 옛 명칭에는 '중앙'이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서울 시민들의 상당수는 중앙정부청사로 이 건물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권위주의 적인 색체를 걷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다른 정부 청사들 처럼 지명을 넣어 호칭을 제정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강을 가운데 두고 남북 강변에는 차량 흐름을 위주로 건설된 자동차 전용도로가 자리잡고 있다. 한강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을 무척이나 어렵게 만드는 넓은 자동차 전용도로는 한강이라는 보기 드물게 넓은 도심 하천을 그저 차창 속 풍경으로 박제해 놓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강변 도로들 중에 유독 특징적인 곳이 하나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두무개다리 길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연속적인 아치 형태인 하부 도로는(한남동에서 동호대교 쪽 진행 방향) 다리 옆 철도를 지나는 전철이나 한강 혹은 동호대교 등이 보이는 독특한 풍광을 지니고 있다.
이 두무개 다리는 2003년에 준공된 곳으로 약 1Km길이의 상하 두 방향을 일방도로로 설계한 교량이다.
명칭의 유래는 다리가 자리잡은 곳의 옛 지명 중에서 두무개길과 연결되는 것에 착안해서 결정되어다고 하고 그 어감이나 다리의 형태가 특이하게 다가오는 그런 곳이다.
여기서 두무개란 두물개, 즉 두 물이 만나 이뤄진 개천이라는 의미로 중랑천과 본류인 한강이 만나는 곳을 지칭한 옛 지명이다.
특히 해가 어스름 지기 시작할 때, 아치 밖으로 보이는 조명을 밝힌 동호대교와 한강변의 풍경이 매우 이채롭다.
동대문 시장으로 통칭되는 종로 5~6가와 동대문 일대의 상권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18세기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동대문 상권은 재래 시장으로서 취급 품목도 곡식에서 어류와 과일에 이르는 식품부터 포목, 잡화 등 다양했다고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문 패션 상가 빌딩들이 즐비한 명소가 조성되어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동대문 인근의 빌딩들은 밀리오레, 롯데피트인, 두타,굿모닝 시티 등 패션타운을 형성하는 밀집 상가 빌딩들이 DDP를 에워싸며 자리잡고 있어 이색적이다.
각 건물 외벽에 자리잡은 중국어 현수막들이 이채롭다. 중국인들이 얼마나 동대문 패션 타운의 주 소비층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가를 대변해 주고 있다.
동대문 패션타운 제일 끝에 자리잡은 독특한 외관의 건물인 롯데 피트인은 원래 동대문 패션 TV라는 이름의 상가 건물이었다. 기억으로 2007년에 완공된 이후 분쟁에 휘말리며 수년간을 영업개시를 못한 채 흉물스러운 불 꺼진 건물로 남아 있었다.
법적 공방과 상가 주인들 간의 의견 대립으로 극한 대치 상황에서 실마리가 안 보였던 이 건물에 주목한 것은 다름아닌 롯데그룹.
복잡한 권리관계를 장장 2년 간의 설득으로 실마리를 풀어 20년 간 장기 임대를 상가주인들 모두에게 위임받은 롯데가 새로 2013년 문을 연 곳이 바로 현재의 롯데피트인이다.
얼마 전 떨어지긴 했지만 롯데가 도심 면세점 제안에서도 이 건물을 후보지로 선정할 만큼 지금은 중국 관광객을 중심으로 하는 특수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롯데의 탁월한 입지 선정이 돋보이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의 외벽을 뒤덮은 도형의 패턴이 눈에 띄는데, 이른바 보로노이 패턴이라 불리우는 것으로 평면을 점과 선을 통해 무작위로 분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작위의 무늬를 말한다고 한다.
서울의 도로명은 역사 속 위인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경우가 많다.
이순신 장군의 충무로, 세종대왕의 세종로, 을지문덕 장군의 을지로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도로 이름 중에서 특이하게 다가오는 몇몇 곳이 눈에 띄기도 한다. 대표적인 도로가 테헤란로.
서울 강남의 신규 개발된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메인 도로에 붙여진 이 낯선 지명의 유래를 알고 보면 더욱 더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된다.
원래는 삼릉로라 불리던 옛 명칭이 있었던 이 도로는 1977년 서울특별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의 자매결연을 기념하여 현재의 테헤란로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중동의 건설에 참여하여 외환을 벌어오던 당시의 경제상황을 미뤄 짐작하면 약간은 처절한 느낌마져 든다. 지금은 너무나 낯익어서 의문 없이 당연하게 부르는 이름 테헤란로는 그런 유래로 작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이채로움을 선사하는 도심속 도로명이 있는데, 그 것은 바로 북악스카이웨이이다.
정식 명칭을 한글+영어가 결합된 형태로 만든 것도 그렇고, 스카이웨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작명도 상당히 특이하게 다가온다. 하늘에 이르는 길. 10km에 달하는 이 길이 준공된 것은 1968년이라고 한다.
실제로 북악스카이웨이를 오르면 북악산 정상부로 갈 수 있어 하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 정상부에 있는 쉼터가 바로 북악스카이 팔각정을 둘러싼 공원이다. 해발 342m에 자리잡은 이 공원의 팔각정 난간에서 보는 도심은 황홀한 풍광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팔각정은 1층과 2층에 걸쳐 음식점들이 입점해 있는데, 장사는 그리 잘 되는 것 같지 않아 보이고 심지어 잦은 교체가 되기도 했다. 최근엔 1층 한식당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남아 있었고 신세계푸드에서 운영하여 평이 꽤 괜찮은 피자나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하늘레스토랑이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은 의외로 다양한 볼 거리를 숨기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늘 높이 솓아 있는 수많은 타워크레인들이 옛것을 덮고 새로운 콘크리트로 도포를 하고 있는 개발진행형 도시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의 뼈 아픈 역사와 고작 수십년 전 전쟁을 겪고 다시 재건된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의 현재는 미래의 과거일 것이고 역사가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일상 중에 흔히 보아 넘기는 도시의 풍경을 간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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