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의 원인 혹은 원흉
글에 앞서, 오늘은 유치원 선생님의 동화구연체로 읽어보길 권한다.
아주 아주 먼 옛날, 작은 나라에 어여쁜 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공주에게는 한 가지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돼지털이 난다는 사춘기에도 숱이 적은 참머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에요.
그녀는 왕국의 모든 여성들이 두려워한다는 악명 높은 산후 탈모가 두려워졌습니다.
다행히 공주의 산후 탈모는 심하지 않았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왕비와 시녀들에게 맡기고 조리에 힘썼습니다.
많이 빠졌지만 그만큼 잘 먹고 잘 쉬어서 회복이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건강해 뵌다, 얼굴 좋다는 말을 할 정도였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공주는 반 대머리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팔자에도 없는 그림을 그리느라 열을 올린 대가랍니다.
한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의 신인 작가 공모전에 얼떨결에 당선이 되는 바람에 두 달 만에 제품을 만들어 나가야 했습니다.
남들 다하길래 쉬운 줄 알았는데 성 밖의 일은 전혀 몰랐던 공주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벽 2시가 되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품 준비부터 포장, 홍보, 판매까지 하나하나 신경 써야 했고, 일러스트용 프로그램과 씨름하는 동안 머리는 숭덩숭덩 빠졌습니다.
공주는 훌쩍였습니다.
왕자는 그녀가 전시 준비로 힘들어서 우는 줄 알았지만, 사실 머리카락이 아까워 울었던 겁니다.
몰골은 흉해졌지만 어쨌거나 전시를 무사히 마쳤고 이제는 그림 에세이 출간을 준비 중입니다.
여러분, 보시다시피 능력 밖의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나에게 거는 저주입니다.
마녀들이 종종 이가 빠지고 머리가 푸석하고, 검버섯으로 얼룩진 흉측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건
되지도 않는 마법을 부려보겠다고 아득바득거리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자의 말로를 보여주기 위함이랍니다.
예쁘게 나를 가꾸면서 내가 할 만큼만 딱 하고 사는 공주님 같은 삶과
나를 뛰어넘는 성취를 위해 소중한 머리카락을 날려버리는 마녀 같은 삶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저는 전자를 골라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의사입니다.
이 동화 속 공주가 왜 후자로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네요(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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