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적 아름다움
내 가슴을 들여다본 것은 큰 가슴을 위해 석류를 하루 한 개씩 먹는다던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였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에 비친 가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밋밋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던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난 후부터 몸을 가리기 시작했듯 친구가 먹던 석류는 내게로 와 선악과가 되었다. 정확히 그날부터 내 작은 가슴이 미친 듯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수술을 하지 않는 이상, 타고난 가슴 크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큰 가슴에 대한 동경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 구석에 모여 앉아 남자들은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한다더라, XX의 가슴이 크다더라, OO는 작지만 모양이 이쁘다더라, 어느 매장에서 강력한 뽕브라를 판다더라 따위의 야한 듯 야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떠들어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가슴이 크다는 헛소문이 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방학 중에 의료 봉사를 가면 시설이 부족해 다 같이 우르르 씻는 일이 왕왕 있는데, 거기서 한 후배가 “굴굴 언니는 비쩍 말랐는데 의외로 가슴이 좀 있네?” 하고 가볍게 뱉은 말이 와전되고 와전되어 가슴이 '크다'는 헛소문이 된 것이었다.
작은 귤 사이즈인데 오렌지 정도의 사이즈로 오해받고 있었으나 애써 나서서 정정하지는 않았다. 귤이나 오렌지나 대세에 큰 지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박이면 몰라도.
비록 귤만 한 크기지만 이 가슴으로도 진한 연애를 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그러고 나서야 ‘이제 됐다.’ 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지금은 가슴에 대한 관심을 끊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더욱 애정 어린 마음으로 관찰 중이다.
가슴은 생리주기에 따라 조그라 들었다 부풀었다를 반복했다.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다니면 순환이 잘 되지 않아 볼품없어지다가 요가 같은 가벼운 근력운동만으로도 탄력이 붙어 모양이 예뻐졌다. 여자에게 좋다는 슈퍼푸드를 먹고 나면 어김없이 단단한 멍울들이 잡혔고, 끊으면 다시 말랑해졌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신체적 아름다움은 건강한 내장기관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시절의 나의 관심은 쓸데없는 집착과 감정소모였다면 지금의 관심은 참된 건강상태를 바라는 아주 바람직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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