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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아픈 아빠 2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사랑

by 최굴굴

엄마는 아빠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고, 나는 엄마 대신 집에 남아 조카를 돌봤다. 할머니가 사라졌다며 엉엉 우는 세 살 배기를 겨우 달래 유치원에 보냈다. 쏟아진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마쳤다. 그 모든 순간들이 꿈처럼 어지러웠다. 무슨 정신으로 움직였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울렸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여보세요?”


소견은 찜찜했다. 맥박도 빠르고, 헤모글로빈 수치도 급성 빈혈 수준으로 낮게 나왔지만 위내시경 검사에서는 이렇다 할 병변을 발견하지 못했다. 병원에선 최근 아빠가 드신 이부프로펜 계열의 감기약이 내시경 상 잡히지 않는 위장관 ‘어디엔가’ 궤양을 발생시키고 출혈을 일으켰던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감기약을 끊고 흑변이 사라지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흑변은 그 후로도 5일이나 지속되었다.

“새로 발견된 암 아니면 된 거야.”라며 아빠는 어디서 피가 나는지도 모른 채 꿋꿋이 일상을 이어나갔다. 출근해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것은 물론, 며칠 뒤 있는 해외 골프 여행마저 취소하지 않는 근성을 발휘하여 가족들의 원성을 샀다.

의사들이란.......

문제는 그 5일간의 나였다.

아빠가 진심으로 걱정되었지만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자식 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처음엔 무감각한 것인지, 너무 놀라 머리가 얼어붙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걱정은 분명했다. ‘큰일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때때로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불안은 눈물이나 격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서늘한 아침 전화에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추슬러야 했던 아빠를 보고 자란 딸이라서?


문득, 엄마가 예전에 해준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 힘들어하셨다고 한다. 단지 부모를 잃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아들이 의사인데.......’ 하는 수군거림이 아빠의 마음을 더 깊이 후벼 팠다고 했다. 하지만 수많은 죽음을 마주해 온 아빠는 잘 알고 계셨다. 인명은 의술이 아닌 하늘에 달렸다는 걸. 언제나 최선을 다했지만, 신의 영역을 넘볼 순 없었다.


물론 죽음은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더더욱 그렇다. 한의사인 나도, 의사인 아빠도 결국 같은 자리에 설 것이다. 하지만 떠남을 알고 있다고 해서 오늘을 더 불안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아빠와 닮은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오늘 변 색깔은 좀 어때요?”

5일 내내 이어진 나의 안부 전화에 아빠는 은근히 기뻐하셨고, 엄마께 큰딸에게 매일 전화가 온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그 말 한마디가 아빠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하루를 살아낼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아플 수도 있으니, 오늘은 더 사랑하자. 그리고 살아있음에 집중하자.

그게 내가 아픈 세상에서 배운 진짜 치료다.




그동안 '아프냐, 나도 아프다' 브런치북 연재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새로운 연재 '나는 왜 늘 이모양이지?'에서 조금 더 깊은 건강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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