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7년 10월 15일 ㅣ 날씨: 이 가을 날씨 딱 나흘 본다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은 시름을 잊기 위해 마당놀이를 했다. 마당놀이의 목적은 주로 윗분들 놀려먹기였다. 왕의 탈을 쓰고, 양반의 탈을 쓰고, 관료의 탈을 쓰고 여차하면 호머심슨 흉내라도 내면서 윗분들 엿맥이는 재미가 꿀잼이었다. 현실에선 "마님 오늘 하신 F/W 신상 비녀가 아주 잘어울리십니다요"하고 립서비스를 터는 처지였지만 놀이에서 만큼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껴서 윗놈들 면상에 들이밀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 현실의 시름을 잊었다. 그 피는 우리 팀장님과 대리님께도 흘러흘러, 고된 '을' 생활을 윗분 까기 놀이를 통해 달래곤 하신다. 대행사에게 갑은 클라이언트다. 클라이언트가 까라면 까야 한다는 뜻에서 AE의 뜻은 'Aㅏ... 이것도 제가 하나요? Eㅔ... 이것도 제가요..?'라는 풍문이 있다. 드럽게 노잼인 게 우리 대표님이 지어낸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그만큼 클라이언트들은 은근히 이 일 저 일 끼워 시켜서 사람 빡치게 하는 재능이 있다. '이 일은 왠지 너네가 잘 할 것 같은 걸? 물론 계약서엔 없지만 너네가 안 해주면 어쩔 건데?' 같은 느낌. 이 정도면 인간적으로 멱살 한 번은 잡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장님과 대리님도 클라이언트에 의한 스트레스와 고혈압 등 성인병에 노출돼 있는데 그때마다 클라이언트를 희화해서 소소한 웃음거리로 삼는다.
"아니 얘네는 지들이 뭘 시키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 같애요"
"걔네도 그냥 윗 사람들이 시키니까 하는 거야"
- 클라이언트 성대모사 시작 -
"어어 요즘 그으 페이스북이란 게 뜬다지? 우리도 그거 한 번 해보자구"
"아 예 그럼요 해야죠 암요(간사)"
"그으 고양시청인가? 거기가 아주 참 재미지더만. 그렇게 한 번 해봐"
"예예 고양시청처럼 하겠슴니다"
"얼마 있다가는 또, 허어 요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게 너무 대충 대충인 거 아닌가? 거기 들어가는 도온이 얼만데, 도온이!!"
"아..그게 원장님이 고양시청처럼... 재미있게.. 하라고 하셔서..."
"아아니 내가 재밌게 하랬지 언제 대애충 하랬나?! 응?? 이거 이렇게 착착 못 알아들어서야 응? 그런 거 있잖아 재밌으면서도 알차고, 어린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또 나이 먹은 사람도 좋아하고 그 디자인도 좀 화려어 하면서도 심플하게 말이야 응? 좀 응?? 샤아아~한 느낌으로. 크으 그 딱! 그런 거 있잖아. 알지? 아 그리고 요전에 내 인터뷰 신문에 난 것도 좀 늫고 말이야. 어렵지 않은 걸 이걸 말이야 그르~ㅎ케들 못하나 그래"
"아 네네 샤아아.. 하고.. 딱! 그런 느낌으로 네네 알겠습니다"
- 성대모사 끝 -
"뭐 이런 거지"
"그래서 해줘요 말아요"
"다같이 불쌍하니까 웬만하면 해주라는 얘기지"
정말이지 진짜 착해빠진 사람들... 이러니까 클라이언트가 오냐오냐 했더니 지가 갑인 줄 아는 자식새끼처럼 구는 거다. 아 얘넨 진짜 갑이지.
팀장님의 메소드 연기 수준이 갈 수록 이건 거의 클라이언트와 접신했다 할 수 있을 만한데 아마 상상 속에서라도 갑이 되고 싶으셨나보다. 우리 다음 생엔 꼭 갑으로 태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