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를 전전하며 살고 있어서 2년 주기로 이사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이번에 새로 이사온 아파트는 그 전에 살던 곳과는 분위기가 좀 다른 것이 있는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인사를 잘 한다는 점이다.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면 꼬마들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주민들이나 경비원님들도 늘 지나치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신다. 직전에 살았던 아파트는 2년 내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곳이었기에 이런 문화가 더욱 신기했다. 입주자의 성격을 보고 입주 시키는 것도 아닐텐데 그 차이가 어디서 날까를 생각해봤다.
내가 발견한 원인은 단순했다. 엘레베이터에 <이웃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합시다>라는 A4 용지 한 장이 붙어 있는 것이 다였다. 메모에 불과한 그 문구가 이 아파트의 문화 자체를 바꾸는데 정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일까?
내 직업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기업문화를 컨설팅하면서 나는 가장 원초적이고 결정적인 솔루션은 명문화(明文化)라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문장으로 명시하여 모두가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리더나 주요 의사 결정권자들의 머리속에 있는 내용을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로 정리될 수 있다.
둘째, 명문화의 과정을 통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개선될 수 있다.
셋째, 이를 통해 기업 의사결정의 투명성이 증대됨으로서 구성원 상호간 신뢰도가 높아지게 된다.
넷째, 하나의 정리된 슬로건이나 문서를 통해 동일한 가치를 동일한 방법으로 오류 없이 공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창업자는 자신이 회사를 세우기 전에 수많은 고민을 한다. 내가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 것인지 등이다. 하지만 이것이 명문화 되지 못하면 차후 채용하는 사람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설득하지 않으면 사이먼 사이넥이 말한대로 사람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자와 기업이 이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문화 한 것이 미션(Vision), 비전(Vision), 핵심가치(Core Value)다. 경험상 기업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이것이 명문화되고 그 방향성을 BSC에 정렬(Aligning)만 잘 해도 거의 다 해결된다. 조직의 문제에서 기술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영역은 매우 일부다. 거의 대부분이 문화와 소프트 스킬의 문제다.
조금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어느 조직이 회의 문화를 개선하고 싶다고 해보자. 대부분의 조직은 회의와 관련한 책을 읽게 하거나 관련한 강의를 듣게 한다. 그것이 과연 영속적으로 조직문화에 기여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해결책은 무척 간단하다.
먼저 구성원들이 모여서(부서 단위라도) 우리가 앞으로 회의를 어떻게 하자고 규칙을 정한다.(이것을 그라운드룰이라고 부른다) 그 다음으로는 그 규칙을 문서로 출력해서 회의실에 비치하고 그 룰에 맞춰서 회의하자고 하면 된다. 정말 단순하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는 인쇄된 그라운드룰이 바로 아파트 엘레베이터에 붙여진 <이웃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합시다>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입주자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을 인쇄해서 붙여놓은 것 그것 하나로 아파트에 인사하는 문화가 정착된 것이다.
회의 뿐 아니라 다른 업무들도 합의를 통해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문서로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된다. 일하는 방식은 업무 규칙으로, 직원을 선발하는 일은 취업 규칙으로, 휴가에 관한 것은 연가규정 등으로 말이다.
즉, 회사의 거의 모든 문제는 매뉴얼을 통해 해결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실행으로 연결되지 않는 죽은 규정은 불필요하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낡고 두꺼운 규정집이 그러하다. 사사로운 행동 하나하나를 다 강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작은 회사에서 최소한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규칙이 없으면 그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규칙이 너무 많은 회사보단 규칙이 없는 회사가 더 위험하다. 자유롭게 운전할 권리를 위해 신호등을 없애자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조직의 문화를 일관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은 네 단계다.
첫째,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규칙 만들기.
둘째, 함께 만든 규칙을 명문화하기.
셋째, 명문화 한 규칙을 업무에 적용하기.
넷째, 규칙을 잘 지키기 (반복 피드백)
이것만 준수되어도 초기 단계 조직의 거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