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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Sep 08. 2024

도축한 고기는 남기면 안 돼

"도축한 고기는 남기면 안 돼. 먹기 위해 동물을 죽였기 때문이야."하더니 책임감을 갖고 남은 고기를 전부 해치웠다. 

-잘 돼가? 무엇이든 中-


죄책감도 공감의 일부라고 보면 나는 꽤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심지어 고기를 엄청 사랑하지만 고기를 먹을 때마다 일말의 죄책감이 드는 것은 내 어쩔 수 없는 천성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너무 많이 먹지 않으려고 한다. 먹을 땐 가능한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도축과 관련된 상상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죄책감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돼지국밥을 워낙 좋아해서 한 번은 인터넷으로 국밥용 돼지 부속고기를 구입한 적이 있다. 2kg에 만 원 남짓. 가성비가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착한 택배 스티로폼 박스를 열고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국밥에 들어가는 간, 염통, 허파, 오소리감투가 손질이 되지 않은 통으로 왔기 때문이다. 그 적나라한 모양새에서 도축의 과정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헛구역질을 해 가며 겨우겨우 작은 크기로 칼질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후로 돼지국밥이나 순댓국을 몇 달간 먹을 수 없었다. 보는 것조차 힘겨웠다. 


물론 지금은 엄청 잘 먹는다. 대신 무조건 음식점에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는다. 당신이 국밥을 사랑한다면, 절대 '국밥용 돼지 부속고기'를 검색하지 마시라. 설령 검색했다고 하더라도 가성비의 유혹에 넘어가 주문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당신의 최애 음식이 하나 사라질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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