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 지기 싫다. 빚지고 사는 일은 불편하다. 받았으면 돌려줘야 한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잘 받는 게 어려웠다. 겉으로 티 내지 않아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다. 나는 언제나 갚아야 할 일들이 남아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신세 지지 못하는 신세, 나광태-
한 때는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신세 지지 않는 태도. 고고하고 꼿꼿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집에 가려고 보니 택시비가 없어도 티를 내지 않고 친구들을 보낸 후 걸어서 집에 오곤 했었다. 만 원을 빌리고 다음날 갚으면 될 일인데도 신세 지는 건 죽는 것만큼 싫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내가 신세를 지지 않으니 타인도 내게 신세 지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세를 주고받은 사람끼리는 미상의 연대감 같은 게 구축된다. 가끔은 신세도 지면서 살아야겠다. 타인이 내게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곁을 좀 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