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당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인생의 장면은 얼마나 되나요?"
책 <이만큼 가까이>를 읽으며 떠오른 질문이다.
과연 주인공은 몇 개의 장면이 남아있다고 대답할까?
정세랑 작가의 <이만큼 가까이>는 여섯 명의 친구들의 성장을 담은 소설이다. 서울 외곽 아직은 개발이 덜 된 파주라는 공간을 지나 10대, 20대, 30대를 관통하는 시간들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첫사랑의 죽음 앞에 놓인 주인공이 그 시간을 지나오는 이야기들이 현실적이라 느껴졌다.
“어떤 충격파도 안쪽까지 닿지 않았다. 그렇게 마취된 상태로 2년을 보냈다. 그리고 감각이 돌아올 때는 저리기 마련이다.” (179p)
주인공은 첫사랑의 죽음을 잠시 미뤄둔 채 그 상황을 바로 이겨내어 바라보지 못했고, 20대를 넘어가는 시점에 그녀는 그녀의 친구인 첫사랑의 여동생(주연)에게서 잊고 있던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 감각을 회복하는 시점, 동시에 첫사랑의 여동생(주연)은 주인공의 첫사랑인 오빠의 고장을 고백하게 된다. 마약을 하다 죽을뻔한 이야기, 신혼부부의 아내의 죽음을 목도한 이야기. 결국 그 역시 죽지 않았더라도, 고장 나서 버틸 수 없었을 거라는 고백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또 그녀의 친구 옆에서 단둘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고장. 그들은 잠깐 고장 나 있었다.
나는 이 고장이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연하게 갑자기 모두에게 찾아온다.
특히 죽음, 부재 등으로 대표되는, 삶을 뒤흔드는 고장은 아닐 수 있지만,
작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이루지 못한 목표에 대한 아쉬움 등 고장은 누구에게나 손쉽게 발생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의 기억을 스쳐가는 고장 中 하나는 5년 전에 발생했다. 2015년 봄, IT업계에 취직하고 싶었던 나는 스타트업에 취직했다. 정규직 보장 계약서를 적었고, 수습 3개월 후 1개월 만에 나는 쫓겨났다. 상호 해지라는 말은 해고의 다른 말이라는 걸 그때야 알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이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궁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 면담 때 녹음하겠다는 나의 말에 높은 데시벨로 고압적으로 말한 그의 모습은 “떳떳하지 못했구나”라는 잔상으로 남았다. 그 경험은 고용 불안정에 대한 걱정을 남겼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일까?
30대를 막 접어든 지금의 나에게 <이만큼 가까이>라는 책은 고장의 경험을 상기시켰던 책이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리 달갑지는 않았던 기억이었다. “괜찮다”라는 단어를 주입시키며 방어해냈던 모습들이 떠올랐고, 약 10km를 2~3시간에 거쳐서, 혁오-공드리를 BGM 삼아 올림픽대교를 건넌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을 보면서 느꼈다. 아직 나는 그 사건을 잊고 살뿐이구나.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어떤 고장을 기억하게 될까 질문하게 된다. 언젠가 또다시 우연하게 고장이 온다면 다음에는 우연하게 지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