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에 거의 3년 만에 필리핀으로 돌아가 집안을 재정비하고 나서 교회 선교단체 팀과 골프손님 그리고 필리핀 공사현장 답사를 오신 일반 손님들을 받아 3개월 정도를 바쁘게 지낸 후 2023년 3월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필리핀은 4월 중순부터 더워지기 시작해서 5월이면 더위가 피크에 이르고 6월부터 우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종의 비수기에 해당하여 여행 오는 손님들도 없을뿐더러 현지 교민들도 거의 한국으로 나가는 시기이다.
한국에 다시 들어와 아들 결혼을 위한 상견례를 하고 병원 정기검진도 받고는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강원도 횡성군 둔내에 있는 T모텔이란 곳에서 4월 딱 1달 간만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객실 하나를 숙소로 제공해 주고별도 주방에서 식사도 직접 해 먹을 수 있으며 쉬는 날 없이 1달에 250만 원을 준다고 하였다. 우리도 5월부터는 춘천의 M모텔에서 일을 시작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있어서 모든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바로 짐을 싸서 시외버스를 타고 둔내로 향하였다. 마침 모텔 여사장께서 차를 가지고 횡성터미널로 마중을 나온다고 하셨다. 요즘 외국인 근로자들이 안 들어와서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데 우리가 일을 하겠다고 하니 너무 반가워서 직접 모시러(?) 온다는 것이었다. 터미널에서 만나 둔내로 가는데 생각보다 험한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의 40분 이상을 한참 돌아간다. 둔내 읍내에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고는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3층짜리 예쁜 모텔에 도착하였다.
[사진출처 : Pixabay]
객실이 총 32개인데 요즘 비수기라서 손님이 많이 없고 대실도 별로 없고 주말에만 10개 이상의 방이 나가니 일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거라고 하였다. 과연 그럴까?
일단 방에 짐을 풀고는 객실을 둘러보며 방 세팅 상태를 점검하고 창소도구 위치를 파악하였다. 세탁실과 건조실에는 여사장이 사용방법을 아주 꼼꼼하게 적어놓아 그대로 이행하면 되었다. 둔내 읍내까지 걸어 나가보니 약 2~30분 정도 걸리는데 개울을 따라 놓인 한적한 시골길을 산책 삼아 걸어 다녀도 나름 괞찮았다. 1주일치 부식과 반찬거리를 몇 가지 사들고 돌아왔다.
[사진출처 : Pixabay]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청소일과가 시작되었다.매일 아침 여사장께서 청소할 방 호수와 전달사항들을 적어서 건조실 탁자 위에 올려놓는데 평일은 10개 이내, 주말에는 13~15개 정도의 객실이 나간다. 특히 정기적인 둔내 장터가 열리는 날은 외지의 상인들이 많이 와서 묵고간다.
모텔 청소일은 어디나 비슷한데 이불 커버 씌우는 게 조금씩 다르고 1회용 어메니티와 물 음료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원래 하던 일이니 금방 익숙해져서 수월하게 하루 일과가 끝나게 되었다.우리도 이제 이 분야의 베테랑이 된 건가? ㅎㅎ
첫날 하루의 일을 마치고 모텔 밖 공터에 나가 보니 따뜻한 봄날씨에 향긋한 냉이가 여기저기 깔려있었다. 역시 시골은 시골이구나!
"어머나, 세상에! 이거 냉이 아니야?"
"여기도 있어"
"이것도 냉이네"
아내가 기쁨의 탄성을 내지르더니 바로 냉이 캐기에 몰입한다. 호미가 없어서 주변에 있는 뾰족한 자재 잔해를 가지고 딱딱한 땅을 헤집어 파서 1시간여 만에 꽤 많은 냉이를 캐었다. 오늘 저녁은 새콤한 냉이무침과 냉이된장국을 먹게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