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지인 몇 명을 모아 개최한 줌 랜선 독서모임을 마친 7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웬만해서는 먼저 누굴 만나지 않는데 그날 들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급작스레 약속을 잡았다. 친구가 근무하는 상수역 근처 카페에서 음료를 얻어 마시고, 진열되어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다 친구의 퇴근과 함께 근처 빈대떡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감자전에 막걸리를 각 한 병씩 깨끗하게 비우고, 기분 좋은 취기가 감도는 채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집이 가까워질수록 좋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까닭 모를 감정적 허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다른 친구와 통화를 하며 한 시간가량 바깥을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몰려오는 공허와 우울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혔다. 부엌 선반과 냉장고에 무슨 재료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래, 베이글. 초코 베이글을 만들어야겠다. 이전에 팝업 식당을 운영하며 만들어 둔 통밀 베이글 레시피에 코코아파우더만 더해 초코 베이글을 만들 요량이었다. 거기에 무화과 스프레드를 만들어 곁들여야지. 그렇게 자정부터 시작된 취중 베이킹은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다. 그랬는데....
이럴 수가! 초코 베이글이 실패하고 만 것이다. 표면은 시커멓고 퍼석한 데다 오븐스프링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엄청나게 쓴 맛이 났다. 무슨 자신감으로 다른 레시피를 참고하지도 않고 코코아파우더를 냅다 들이부은 탓이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섯 시간 뒤에 알람을 맞추고 벌떡 일어났다. 잠들기 전에 수정한 레시피대로 계량해 마침내 원하는 퀄리티의 초코 베이글을 만들어냈다. 휴. 그럼 그렇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힐 위기를 가까스로 비껴간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베이글을 컷팅하고 오븐에 구워 무화과 스프레드를 발라 먹었다.
최근 들어 핸드폰을 보는 일이 두려운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받고 싶지 않은 가족으로부터의 연락이 오는 게 두려워서이고, 둘째는 그 연락 외에는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두려워서이다. 그래서 자주 핸드폰을 꺼둔다. 오후 네 시부터는 집 근처 장어집에서 아르바이트 일정이 있다. 베이글 두 개를 든든하게 챙겨 먹은 뒤, 유니폼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나는 며칠간의 극심했던 감정 기복을 그새 능숙하게 다루게 된 사람처럼 꽤나 괜찮아 “보였다”. 그래. 괜찮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지금껏 잘 해왔는 걸. 심호흡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 짓는 연습을 해본다. 기껏 해야 여섯 시간. 그동안만 버티면 된다. 근무 시작 십분 전, 핸드폰을 꺼둔 채 집에 두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로비를 지나 매장까지는 채 오분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어쩐지 길게 느껴졌다. 쬐는 해가 뜨겁고 중력이 새삼스레 무겁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 직원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사장님이 밖에서부터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창문으로 봤는데 뾰로통한 표정이었다며 장난을 걸어왔다. 하하. 더워서 그런가 봐요. 대답하고는 뒤돌아서 울음을 참았다. 무전기를 차고 2층 홀에 올라갈 준비를 하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계단을 올라가자 여느 때처럼 왁자지껄 떠들며 즐겁게 식사하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뇌에 쥐가 난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고 팔다리가 뻣뻣하고 무거워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직감했다. 아. 나는 여기까지구나. 홀을 다른 직원에게 맡기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사장님과 마주 앉아 장어 핀을 꽂는데 입을 떼면서부터 울음이 터졌다. 횡설수설하며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나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사장님은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마지막이니만큼 하던 일까지 마무리하고 싶어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장어 위에는 안 흘렸다) 기어이 끝까지 장어 핀을 꽂았다. 매장을 나와 직원들의 눈이 닿지 않는 하수구 앞에 쪼그려 앉아 마침내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조금 더 울고 싶었지만 곧 동네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것 같았다. 비틀비틀 방에 들어와 괴성을 지르며 마저 울었다. 그렇게 월요일에 유튜브 팀 활동을 중단한데 이어 토요일에 장어집 아르바이트도 그만뒀다.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던 2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출근 전 샤워 부스에서부터 시작된 불안발작을 억누른 채 근무하다가 위경련으로 쓰러지거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밸브가 터진 수도관처럼 눈물을 쏟아냈고, 당분간 근무가 어려울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었다. 다만 그때 찍은 것이 쉼표였다면, 이번엔 마침표. 침대 옆에 쓰러지듯 누워 울던 나는 옷장 문에 걸어놓은 도어 행거를 올려다보며 저 후크에 46킬로의 체중을 매달면 과연 몇 분 동안이나 부서지지 않고 버틸지 생각하다가 불현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아 죽기 살기로 버텼는데, 이러다간 정말 죽어버릴지도 몰라. 살기 위해서 받아들여야만 한다. 지금까지 고수해 온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 내가 볼 땐 너 조울증인 것 같아.”
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약 1년 전 당시 만나던 애인에게서였다. 그때 나는 근무지에서 겪은 성추행 이후 무기력과 불안 발작,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그 사건만이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감정 기복이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던 와중 팝업스토어 운영의 기회를 얻게 됐는데, 무기력한 자신이 쓸모없다는 느낌으로부터 도망치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몰두했다. 밤낮 할 것 없이 뇌를 쉬지 않고 채찍질하며 메뉴를 구상하고 끊임없이 테스트하느라 수면 패턴과 식습관은 엉망이 되었고, 빵과 소스부터 속재료 하나하나까지 매장 운영 경험이 없는 사람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방대한 레시피를 마구마구 뽑아댔다. 그렇게 내가 벌인 일을 홀로 온전히 감당하려니 몸을 혹사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면 과로,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더 잘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깊은 우울감에 빠져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다.
돌이켜보면 이런 패턴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첫 시작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일반 인문계 학교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고 있었는데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당시 교회를 다니며 피아노 반주까지 맡고 있어서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일주일 내내 3시간 미만으로 잤던 것 같다. 열여덟 살 즈음부터 몸이 꽤나 심각한 수준으로 망가지고 있음을 느꼈지만 애써 외면하며 어떻게든 대학 입시까지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다 허리디스크로 앉아 있을 수 없게 되고, 과호흡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등 끝내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하게 되어 입시로부터 도망쳤다. 그 후 삶의 목표를 잃고 깊은 우울감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흉터가 남을 만큼 심한 자해를 했던 것도 그때였다.
내가 삶의 전반에 걸쳐 겪고 있는 어려움을 <조울증>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가정과 사회가 필연적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나는 신경정신과적 진단이나 약물치료에 회의적인 편이다. 약물은 증상 완화에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순 있지만 궁극적인 치료 방안이 될 수 없다.
어떤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 <질병>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존재하지 않던 것이 어느 순간 뿅 하고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인식과 반응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질병 비질병으로 선을 긋기보다는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애초에 인간이 편의를 위해 구분 지어놓은 거니까.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면 있는 그대로 살아가면 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해결 방안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어떠한 증상과 반응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효용이 있다.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은 인류 역사에 걸쳐 비슷한 반응에 대한 연구와 치료가 이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나 외의 다른 표본이 여럿 존재한다는 뜻이다. 내가 겪고 있는 불편과 어려움이 비단 나만이 겪은 일이 아니라는 데에서 오는 압도적인 안도가 있다. 또한 언어의 경제성이 있다. 이러이러한 증상과 반응을 이 단어로 축약하기로 해요-라는 일종의 약속이니까.
나는 정신 질환이 생존을 위한 방식으로 뇌가 변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암이나 성인병 등 신체 질환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내가 지금까지 정상적인 상태라고 믿어왔던 일종의 “경조증” 상태에서, 강렬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일종의 “우울증” 상태를 오가는 것은 나를 살리기 위해 지금껏 뇌가 채택한 관성적인 반응일 테다. 그 두 가지 상태 모두 나의 일부이며 온 생애에 걸쳐 지금의 나를 이룬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수해 온 뇌의 작용 방식이 나의 삶을 지속하는 데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여실히 느끼고 있다. 나는 살기 위해 아마도 나를 더 알아야 할 테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삶을 찬찬히 되짚어보려 한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주고받은 가상의 대화를, 흰 화면 위에 검은 글씨로 쏟아내며, 아주 처음부터,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