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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친일파2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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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리 Sep 30. 2024

외면

제9 장 신념(4)

 사용 중인 소총이 다른 나라의 무기에 비해 파괴력이 떨어졌다. 총탄의 구경이 작았기 때문이다. 개선을 위해 총탄의 구경을 키웠다. 그러자 소총의 길이가 너무 길어져서 키가 작은 일본군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러한 소총은 이동을 하거나 사격을 할 때 불편했다. 사병들이 자신의 키만 한 총을 들고 사격을 하자 명중률이 떨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무기를 개발함에 있어서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병들이 천황 폐하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명중률이 떨어졌다고 말하면 다 끝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무기가 개량되고 개발되었다. 기관총, 기관 단총, 전차까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문제가 생겼지만 해결된 문제에 대해서만 포장을 하면 되었다. 

 이런 엽기적인 사고방식은 결국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이런 비정상적인 생각이 가장 만연하던 곳은 다름 아닌 군부였다. 이 무렵 일본은 군부가 지배하고 있었다. 내각이나 의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그저 꼭두각시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군부는 엽기적인 논리로 더 큰 전쟁을 일으켰다. 그 논리에서 인간은 없었다. 인간의 목숨, 존엄성 이런 것들은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인간은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워 줄 도구일 뿐이었다. 

 그들은 만주에서 멈추지 않고 중국 본토까지 침략했다. 군사력과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그들보다 약세인 중국을 상대로 초반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자 그들은 미국을 상대로 더 큰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국이었다. 모든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전쟁에 승산이 없다 하였지만 군부의 수뇌들은 정신력이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 하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그들에게 미국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중국 난징에서는 몇 십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동남아의 여러 지역에서 잡힌 전쟁 포로들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필리핀에서 포로로 잡힌 미군은 제대로 된 식량과 물조차 없이 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일명 죽음의 행진이었다. 태평양의 어떤 섬에서는 포로의 인육을 먹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 밖에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지만 이 모든 일의 원인인 군부의 수뇌부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강제로 입대한 일본인들 또한 있었다. 엄청난 수의 일본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반 시민들의 삶은 비참했다. 군부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잡혀가서 고문을 당했고 죽기까지 하였다. 먹을 것은 모두 군량미로 빼앗기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 시절 일본인들은 불행했다. 하지만 군부에게는 같은 민족의 목숨조차 하찮은 존재였다.

 잘못된 사회였고 나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난 모른 척했다. 나의 이웃 중에도 아들이 강제로 징병당해 전쟁터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다. 난 내 아들이 아직 어려 징병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할 뿐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어찌 되건 나만 편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군부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될수록 군부는 점점 더 폭주하고 사람들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 줘야 했다. 모든 것은 수치로 판단되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치만 잘 맞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전쟁이 점점 치열해질수록 생산량을 늘려야 했다. 무리해서 생산량을 늘리니 품질이 떨어지고 불량품이 많아졌지만 난 적어도 생산량을 늘리라는 그들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인정받았다. 늘어난 생산량의 수치만 보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많은 연구자들은 예상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솔직히 보고하며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그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천황에 대한 충성심으로 아무 말 없이 명령을 수행할 것을 원했다. 난 군말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다. 양심 있는 연구원들은 옳은 소리를 내서 경질되었지만 난 잘못된 것을 묵과한 대가로 더 높은 지위와 사회적 명예를 얻어 갔다. 

 나는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로웠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다. 내 아내와 아들은 다른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해택을 맘껏 누리는 입장이었다. 비정상적인 사회였지만 난 그 속에서 출세를 했다. 신홍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다짐한 편안한 삶을 이루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가끔 공허하고 무언가 뻥 뚫려 있는 느낌을 받았다. 원하는 것을 이루어 냈다고 자신하였지만 아주 즐겁지만은 않았다. 마음속에 요동치는 어떤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지금 상황을 잘 유지하며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더는 그렇게 할 수 없을 일이 발생했다.  



 일본이 패망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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