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우리 국사 선생님은 정말 예쁘신 분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이가 30대가 중반 정도로 아주 젊으셨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굴이 요즘 연예인들처럼 흠 없이 예쁘셨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여드름 자국이 얼룩덜룩 남아있던 얼굴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표정에는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었기에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그분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따로 없었다.
선생님은 말씀하시다가 잠시 멈추시는 순간마다 입술을 위아래로 ‘앙’하고 무는 버릇이 있었는데, 탐스럽게 도톰한 선생님의 입술이 바로 저 습관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호기심에 나는 한동안 ‘앙’ 하고 입술 무는 버릇을 따라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선생님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국사 과목을 좋아하지 못한 것은 참 유감이다. 아무튼 나는 국사든 세계사든 ‘사’자가 들어가는 과목에서는 영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것도 아주 한결같이!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은 칠판 필기를 끝내셨고 우리들은 여전히 열심히 노트 필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필기를 마친 다음 우연히 선생님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창밖을 바라보시던 선생님의 입 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볼을 동그랗게 밀어 올리며 부드러운 포물선을 만들던 입 꼬리는, 눈가의 작은 주름까지 이어져 선생님의 얼굴을 활짝 피어난 장미꽃처럼 만들었다.
아름다웠고 환상적이었다. 그 미소는 정말이지 지금까지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런데 아름다웠던 것이 단지 미소의 모양만이 아니었다. 그 미소 뒤에는 수많은 상상을 가능케 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는 듯했다. 우연히 그 신비로운 미소의 목격자가 된 나는 그 순간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도대체 어떤 추억이기에 저토록 아름다운 미소로 남을 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열네 살 소녀의 가슴에 하나의 소망이 피어났다.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창밖을 바라보며 딱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추억을 하나쯤 가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많은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는 그날의 선생님보다 더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그날의 선생님의 미소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묵직한 통장 잔고나 내새울 만한 성취는 없지만, 이런 미소가 떠오르는 날에는 그래도 이 작은 삶을 꽤 잘 살아왔구나 싶어져 괜스레 뿌듯해진다. 이쯤 되면 괜찮은 인생이구나...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국사 선생님의 그것처럼 아름다운 미소가 떠오르는 추억 하나쯤 꼭 간직하고 살면 좋겠다. 그리고 그 소중한 추억들을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있다면 더 좋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섰을 때 함박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이 있다면, 사는 일이 고단한 어느 순간에 아주 큰 힘이 되어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오늘 밤 그대, 그런 미소를 가졌는가?
나의 글은 그대를 향한 시선
- 최서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