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세이는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짠!
제목과 사진에서 어떤 상황인지 대략 감이 오시나요? 네, 맞습니다. 그야말로 전지적 변기 시점에서 저희 아들과 그의 절친들 모습이네요. 저는 오늘도 변기에 앉은 채 이들의 결투를 끝까지 지켜봐야 했습니다. 하~아.
요즘 들어 유난히 엄마 바라기가 된 여섯 살 둘째는 제가 30초만 안 보여도 저를 찾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어딨어?" 그럼 저는 보통 바로 대답을 해요. "응, 엄마 여깄어." 그런데 가끔씩 제가 소리를 못 듣거나 대답을 못 할 때가 있어요. 그럼 여지없이 특유의 짜증과 징징거림이 발사됩니다. "아아니이~ 나 혼자 놓고 가면 어떡해!"
아홉 살 첫째라고 크게 다르지 않네요. 그나마 둘째보다는 낫지만 집에 같이 있어도 거실에 혼자 있는 건 무서워하고 제가 방에 있을 때면 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놔야 하고요. 아직은 혼자 심부름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고 제가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올 때도 CCTV로 저를 내내 지켜봅니다. 이쯤 되면 스토킹 수준이죠. 하하.
그래서 올해 2월부터 코로나 집콕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하루에 엄마 소리를 정말 오백 번은 듣는 것 같아요. 그나마 둘째가 6월부터는 유치원에 정상 등원을 시작해서 한결 수월해지긴 했지만, 지난 2주 동안 방학이라고 내내 집에 있다 보니 또다시 오백 번 엄마 콜링이 재생됐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러다 제가 며칠 전에 대폭발을 해버렸어요. "엄마 좀 그만 불러, 쫌!" 순간 애들은 완전 얼어버렸죠. 우리 착한 둘째는 "엄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순간 또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대체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요즘은 이런 사이클의 연속이에요. 힘들고 피곤한 거 애들한테 짜증 내고 다시 사과하고.
요즘 제가 그래요. 작은 일에도 쉽게 화내고 짜증 내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제대로 타고 있네요. 워낙에도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도통 자유시간이 주어지질 않으니 더 심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요사이 곰곰 생각해봤어요. 내 안의 분노, 그 정체는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것일까.
그랬더니 단어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오르더라고요. 인정.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나 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 내가 정말 똥 하나도 속 편하게 못 싸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그걸 아무도 안 알아주니 너무 화나고 속상했던 것 같아요. 참 유치하죠. 그게 뭐라고. 애들 키우고, 살림하는 건 당연히 제 몫인데요. 번역 일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는데 마흔 앞두고 마흔 앓이를 하는 건지 유난히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더라고요. 아마 결혼 10년 차라는 현실이 겹쳐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단물, 쓴물 다 맛본 10년 차 결혼생활. 거기에 내년이면 마흔이라는, 내 청춘 다 지나가버린 듯한 허무함. 그런 것들이 겹쳐서 한꺼번에 온 것 같아요.
이렇게 분노에 찬 하루하루를 보내던 제가 오늘 완전히 제 귓가를 빵! 하고 때리는 듯한 영상 하나를 보게 됩니다. 세바시에 출연한 개그우먼 김효진 님 영상인데요. 저랑 아주 비슷한 경험을 하셨더라고요. 그분도 마흔 즈음에 저처럼 인정에 대한 욕구 때문에 심하게 앓으셨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목이 너무 마른데 여태껏 누가 물 떠 다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구나. 내가 가져다 먹을 생각은 안 했었구나.'
그때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완전히 바뀌셨다고 해요. 누군가 물 떠주기만을 기다리면서 목이 마르다고 화낼 게 아니라 스스로 물을 찾아 먹을 줄 아는 삶.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서는 삶. 그렇게 본인이 바뀌자 남편도 가족도 조금씩 바뀌며 안정을 찾았다고 해요.
행복도 셀프. 이 말 참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요즘 번역하는 책이 워킹맘의 행복에 관한 내용인데요, 거기도 비슷한 말이 나오더라고요.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은 물리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선택 문제라는 거죠.
나는 똥 하나도 속 편하게 못 싸며 죽어라 열심히 사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거야! 불평하고 불만할 게 아니라 아내로서 엄마로서 맡겨 주신 사명을 깨달아 하루하루 그것을 실천해가는 삶. 내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쉽진 않겠죠. 그럼에도 내가 이 세상의 전부이자 우주인 우리 아이들이 있기에 다시 힘을 내 봅니다. 엄마 소리 500번 하면 어떻습니까, 그까짓 것 똥 좀 편하게 못 싸면 어떻습니까! 엄마의 때, 엄마의 자리를 지키는 게 지금 제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지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