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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Nov 19. 2019

거울 일기를 씁니다

11월 셋째 주 명상 기록

새로운 명상 과제를 받았다. 거울 일기를 매일매일 작성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진행하면 된다.




 좌선하고 앉아서 하루를 상기시켰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상황을 떠올립니다. 그 상황에서 인식에 따른 감정을 네이밍 합니다.


1. 나의 인식 : 내 주관적 인식을 작성합니다

2. 상대방의 인식 :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상황을 해석합니다

3. 제삼자의 인식 : 제삼자가 되어서 그의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합니다.

4. 앞 3단계를 읽은 후, 나의 배움 : 다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지, 무엇을 간과했는지 작성합니다.


 매일 해주세요. 꼭 그날 하루로 한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복되는 사건일 수도 있고 새로운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눈을 감고 떠올릴 때 가장 강하게 마음이 동요하는 상황을 보시면 됩니다.



 * 거울 일기 예시






2019년 11월 10일 일요일 / 호흡 명상은 못함


1. 나의 인식 : 내가 집에 들어왔는데, 동생이 엄마랑 통화하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바꾸라고 하나보다. 동생이 "나 엄마가 한 말 다 알아 들었어. 내가 언니한테 말하면 돼"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계속 나를 바꾸라고 해서, 결국 내가 받았다. 삼촌이 사골국물 가지고 오니까 김치냉장고에 잘 넣어두고, 창고에 김치통 꺼내서 삼촌에게 주라는 말이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동생이 이미 다 이해하고 알고 있다는데, 꼭 내게 말을 한 이유를 모르겠다. 듣기 싫었다. 건성건성 듣고 대답했다. 나는 집안과 관련된 일을 다 내 책임으로만 지우는 것 같아서, 별게 아니었는데도 부담이 되었다. 엄마가 다 큰 동생을 못 믿는 것도 불편하다.

 

2. 상대방의 인식 : 작은 딸 보다 큰딸이 믿음이 간다. 한 명한테 말하는 것보다 두 명 다 확실하게 말해둬야 사골국물도 잘 받고, 김치통도 잘 건네줄 수 있을 것 같다. 건너 건너 말하는 것보다 직접 내가 말하는 게 정확하게 전달된다. 오빠가 멀리서 왔는데 잘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3. 제삼자의 인식 : 짧은 통화인데, 다 들어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듣고 알겠다고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굳이 듣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엄마한테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4. 앞 3단계를 읽은 후, 나의 배움 : 일단 잘 경청했어야 한다. 그다음에 엄마한테 물어볼 것이다. 나한테 먼저 다 말했으면 동생한테는 말 안 했을 거냐고. 안 말했을 거라고 말하면,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한다. 동생도 다 큰 성인이고 집과 관련된 그 정도의 일은 혼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 나에게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 오후 11시 30분 ~ 12시


1. 나의 인식 : 이모네 집에서 하룻밤 잤다. 지난밤에 삼촌네 식구랑 이모네 식구랑 고기 궈먹고, 과자 먹고 놀아서 집안이 엉망진창이었다. 엄마가 아침에 나한테 청소기 좀 돌리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도 내가 청소하는데 여기서도 또 청소하라니까 하기 싫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친척 언니의 돌도 안 지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청소기 잡기는 싫었고, 조카를 안고 있고 싶었다. 동생은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서 누워있었다. 내가 동생 시키라고 하니까 엄마가 동생은 그동안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안된다고 했다. 나도 집 갈 때 운전해야 돼서 피곤하다고 싫다고 했다. 솔직히 운전하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엄마가 운전하겠다고 했다. 엄마도 미안했나 보다. 그런데 나는 '청소기 돌리기'가 하기 싫어서 댄 핑계일 뿐이다. 그런데 막내가 눈치껏 자기가 청소기 돌린다고 했다.


2. 상대방의 인식 : 큰딸이 청소를 잘하니까 말한 것뿐이다 작은 딸은 집안일을 잘할 줄 모른다. 게다가 토요일에 시험 보느라고 고생이 많았고, 그동안 시험 준비했던 게 아직 피로가 안 풀렸다. 그리고 큰 딸이 그동안 집안일을 해왔으니까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 것이다.


3. 제삼자의 인식 : 친척 언니가 큰딸의 서러움이 많다고 했다.


4. 앞 3단계를 읽은 후, 나의 배움 : 싫다는 표현 대신 동생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하라는 모든 것을 내가 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백수가 청소하지 누가 청소하나 싶기도 하다.




2019년 11월 13일 수요일 / 오전 9시~9시 30분


 딱히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다. 호흡만 바라봤다.




2019년 11월 14일 목요일 / 오후 11시 ~ 오후 11시 30분


1. 나의 인식 : 요가원에 새로운 수강생이 왔다. 아쉬탕가 2시간 수업을 마치고, 강사님이 회원등록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 수강생이 아쉬탕가 수업이 오후에 별로 없다고 말했다. 새벽 6시 30분에 출근 전에 하실 수 있다고 말하니, 집이 여기서 1시간 걸린다고 했다. 회사는 여기 근처인 거 같았다. 그때 옆에서 보던 대표님이 "고운이도 한 시간 걸리지?"라고 물었다. "네. 저는 하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네. 저도 한 시간 걸리는데, 새벽에 수련하면 상쾌하고 좋더라고요."라고 대답을 할 것 그랬나 싶었다.


2. 상대방의 인식 : 모르겠다.


3. 제삼자의 인식 : 모르겠다.


4. 앞 3단계를 읽은 후, 나의 배움 : 내가 왜 저렇게 대답을 했는지 생각해봤다. 그 수강생이 등록을 안 할 거라는 예상을 깔고 있었다. 우선, 그는 상당히 요가를 전투적으로 했다. 내가 수련하는 동안 그를 보고 싶진 않았지만, 거친 숨소리와 퍼드덕거리는 움직임 때문에 자꾸 눈길이 갔다. 우리 요가원에 다니는 남자들이 에스트로겐이 다른 남성보다 많아 보이는데. 그 수강생은 테스토스테론이 일반 남성보다 상당히 넘쳐 보였다. 그래서 그가 등록을 안 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겉모습을 보고 타인을 앞날을 지레짐작한 것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년 11월 14일 금요일 오후 1시 ~ 1시 30분


 강렬하게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은 '동생이 죽었나'였다. 날씨가 흐려서 해가 중천에 떠있진 않았지만, 점심시간이 되도록 동생이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늦게까지 잘 자는 애라서 신경 안 쓰고 있었다. 그런데 명상하는데 갑자기 저런 극단의 생각이 떠올라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정말 생각하다가 할 게 없어서 저렇게 까지 생각하나 싶었다. 명상이 끝나고 동생 방에 가보니 마침 딱 깨서 눈을 비비고 있었다.






 내 마음의 결점을 낱낱이 받아들이고, 내 안의 암흑으로 진입하는 과정인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어떤 상황에 집착을 하고 날을 세우는지 깨달았다.

 모든 감정은 과거로부터 축척된 경험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다. 당신과 내가 동시에 같은 사건을 겪어도 일어나는 감정을 다르다.

 내가 어떠한 상황과 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 상대방이 그러해서 아니다. 내가 그렇게 느낀 것뿐이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은 모두 잠시 스쳤다 사라진다. 애써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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