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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Seattle Jul 01. 2020

내 이웃 알츠하이머

부모님께서 사시는 콘도에는 은퇴 노인분들이 많이 사신다. 한 번은 85세 노인분께서 욕실에 물을 틀어놓고 잠드셔서 새볔에 아래층 세대들이 줄줄이 물벼락을 맞았다. 그 중 한 세대 역시 노인분이라 소방관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으셔서 소방관이 도끼로 문을 부수는 일까지 있었다. 부모님 같은 층에 사시는 90대 메리는 얼굴에 착함이 묻어 나는 할머니였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볼 때면 눈에서 따뜻한 광선이 뿜어져나왔고 수십 년 전에 떠난 남편 얘기를 입에 올릴 때마다 바로 어제 일처럼 슬픔에 떨곤 하셨다. 메리는 남편이 수십년 전 함께 캠핑하던 중 사고사 한 후 줄곧 혼자 사셨는데 일년에 한 번 의붓 아들이 방문할 때 빼고는 방문자가 전혀 없었다. 부모님 왈 평소에는 전혀 밖에 안나오신다고 했는데 내가 딸 아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마치 기다리신 듯 복도에서 서성이시곤 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메리가 딱 한번 다급하게 내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장볼 때만 사용하는 잘 관리된 90년대식 오픈카의 트렁크가 열리지 않는다고, 안에 있는 장 본 것들이 썩으면 어쩌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열쇠를 받아 트렁크 버튼을 누르자마자 트렁크는 부드럽게 열렸고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메리에게 침착하게 열쇠 사용법을 설명했다. 불과 얼마 전에 직접 트렁크를 열어 장바구니를 넣은 메리는 마치 처음 자동차 열쇠를 본 사람처럼 사용법을 배우고 여러번 고맙다고 인사했다. 장바구니를 집 안까지 들어드리는데 안에는 온통 시리얼과 유통기한이 긴 우유밖에 없었다. 치매끼가 있는 노인들이 혼자 사는 집에는 안전을 이유로 스토브 등 가열을 할 수 있는 기구들이 금지된다.


내 이웃에도 처음 3년 동안은 90대 중반의 바바라라는 할머니가 사셨다. 50년째 한 집에 살고 계셨던 이 할머니께는 60대 후반께의 착한 조카 부부가 거의 매주 찾아와 말벗을 해드리고 쇼핑도우미와 산책도우미도 있었다.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는 바바라는 어찌나 멋쟁이인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올 때도 옛날 흑백영화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모자-장신구-옷-신발을 갖춰 입고 나오시곤 했다. 그 우아한 모습으로 내게 늘 '안녕? 새로 이사왔니? 난 바바라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바바라의 알츠하이머가 심해져 요양원으로 옮길 때까지 난 3년 간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이웃에게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비싼 양로원들은 좋은 시설, 알찬 여가 프로그램, 특급 셰프와 좋은 식재료들로 주민들과 방문자들의 미각을 사로 잡기도 한다. 실제로 본인도 노년이었던 한 직장 상사는 주말마다 본인 장인장모님이 계신 요양원에 찾아 뵙는 일이 딱 좋은 레스토랑 갈 때만큼 즐겁다고 했다. 양로원 식당이 본인 집 기준으로 반경 60km 내 최고의 레스토랑이라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립적인/성인 자녀의 가정과 함께 사는 삶을 선호한다. 고급 양로원을 칭송하던 내 직장상사도 본인의 넓은 집을 결혼한 딸 부부에게 주고 같이 사는 방법을 도모하고 있었다. 바바라가 간 곳도 고성 같은 인테리어에 매 끼니를 연회장 같은 곳에서 서빙하는 곳이었는데(바바라가 이사 들어간 후 집에서 멀지 않은 그 요양원의 식사 시간, 댄스 수업 등을 구경한 적이 있다) 바바라는 버틸 수 있는 한 최대한 버티다 옮겼고 옮기신 후 몇 달 만에 돌아가셨다. 


본인이 치매끼를 보이면 반드시 버리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나의 외할머니는 아직까지 독립적인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치매가 생기면 본인을 버리지 말라고 애원할테니 그건 니 할머니가 아니라 치매가 하는 말이니 무시하면 된다고 하셨다. 아마 할머니는 양로원에 보내는 것을 버리는 것으로 표현하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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