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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22. 2019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라

탈탈 털렸다.

생계유지를 위해 의뢰받은 글쓰기를 할 때가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힘든 일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의뢰받은 글은 글의 톤이나 목적이 다르기에 매 순간 인내심을 테스트하곤 한다.

소위 <글쟁이>의 오만이 아니라 기본 성격이 다른 글이니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주로 정보전달을 위주로 하는 글에 적당한 ‘갬성’을 입히는 일은 마냥 단순하지도, 그렇다고 매순간 영감을 끌어올려야 할 만큼 예민하지도 않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재미라니? 배가 불렀구먼.' 이라 할 수 도 있겠지만 직장생활 재밌는 분 몇분이나 되실까? ^^


이번일의 경우, 작업의 과정은 지난하고 지루하였으며 그에 보태 어떤 트러블로 인해 속된말로 ‘빡이 칠 대로 쳐’ 버렸다. 그래서 지랄 좀 하셨다. 막판에는 나는 못하겠으니 다른 사람 찾으라 했다.

(그러나 결국 내가 했다.)


내가 가난한 글쟁이인 것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작용 했겠으나, 지난 글에도 언급했듯 ‘애매함’ 때문이다.

진입하고자 하는 곳에 닿기에는 역량이 모자랐고, 나를 환영하는 곳에서는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밥은 먹어야 하므로, 커피도 사먹어야 하므로, 그래야 글을 쓸 수 있으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일을 대충하는 법은 없다보니(자존심이다.) 지랄 맞은 성격(일할 때 고분고분 하지 않음을 그냥 이렇게 표현한다)대비 뽑아내는 결과물이 제법 좋은 편이다. 그래서 나를 찾는 이들은 그 계산서를 두드려보고 나의 지랄 맞음을 감수하고 나의 자존심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취하는 것이다.

자본이 돌아가는 세상은 기브&테이크, 철저한 계산이다.


그럼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양보하면서 맞춰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 바탕은 '일이 끊길까' 의 불안과 몇알만큼의 순수한 선의였으나 결론은 호구가 되더라.

그래서 굶을 때 굶더라도, ‘저는 괜찮아요.’ ‘제가 그냥 할게요.’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원고가 아닌 이상 단순한 수정작업이라도 내가 그 파일을 연 순간 단 몇천원이라도 지급하라고 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받았다. (기나긴 호구생활 끝에 얼마 안된 일이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필요하다면 찾겠지.

이쯤 살았는데, 이제와 건물주가 되겠나 뭐가 되겠나. 그냥 이렇게 살아도 대세에 지장이 없는 한 ‘비굴’이라는 굴비 따위는 엮지 않기로 했다. 얼마나 살 것이라고.


뭐, 내가 진입 하고 싶은  곳에 진입하게 된다면 한없이 낮은 포복으로 길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조차 이 영역이 만만해진 모양이다.

나는 한낱 인간이니까.



구구절절한 사정이야 옮길 필요는 없겠고 이 작업을 끝내는 동안 지겨움과 싸우느라, 짜증을 누르느라, 그럼에도 대충하지는 못하느라 몸과 마음이 탈탈 털려버렸다.


마지막에는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 내리 12시간을 앉아있었다. 그 와중에 사소한 것이라도 책잡히지 않으려 확인하고, 확인하느라 나와 내가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100프로 만족이란 있을 수 없을 테지만 그건 내 몫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하지 않은 '만약..'은 의미가 없으며 내 생각이 다 맞는 것도 아니기에, 다른 상황을 가정하면서 비교하거나, 다른 선택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혹은 지금의 내 상황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여전히 하고 싶으며, 그 일을 위해  밥벌이 하느라 탈탈 털렸다는 ‘수다’를 떨고 있다.


통장에 찍힌 알량한 숫자를 확인 한 후에, 작업 파일을 싹 정리해서 안 쓰는 usb로 겼다.

늘 그러했듯 일정기간 보관하다가 삭제한다. 끝.





20대 대학시절의 나는 일주일에 한번 씩 손톱색깔을 바꾸고 (형광색, 검정색 등등을 가리지 않았다.) 손톱은 늘 긴 상태를 유지했었다. 이 길에 들어선 이후에 손톱위에 뭐가 있거나 조금만 길어져도 타이핑할 때 자판에 손톱이 걸리거나 손톱 위를 덮은 답답함이 신경을 거스르니 손톱은 늘 바짝 깎고, 네일은 고려하지도 않는다. 어느 순간 한 없이 예민해 지기에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덜 신경쓰이도록 스스로 최적의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얼마 전 손톱에 네일을 올렸다. 기나긴 사정은 생략하고, 퇴근하려 마감 정리하던 지인이 ‘그냥 색깔만 칠해줄게요. 바로 지워요.’ 라고 하는 말에 생각 없이 냉큼 앉아 손톱을 맡겼는데 ‘그냥’ 이 아니었다. 할 건 다 하고, 케어까지 해 주고 말 그대로 디자인 없이 <색깔>만 칠해준 것이다. 이건 비용을 지불해야겠다 싶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제대로’ 한 게 아니라서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제대로’ 한 게 아니라고?  맞다. 그는 프로였다.

내가 모르는 세계, 그 세계의 프로의 자존심을 오만하게 생각했다.

이번 건 <선물을 강탈>한 셈 칠테니 다음에 내가 이 일 안할 때 정말 ‘제대로’ 예쁘게 올려달라고 했다.


‘그런 날이 있기는 해요?’ 라고 깔깔 웃는다.

‘음...발로는 글 안써요, 발에다 합시다.’라고 마무리했다.




실제 색감이 훨씬 예쁜데 사진을 '앞발' 로 찍다보니...


바로 지우기는커녕 여전히 유지중이다. <강탈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므로.


지난하고 지루한 작업에 예민해질 때마다 핏빛 손톱을 보며 잠시 쉬었다.

예민하고 유난스럽게 <글> 쓴다고 ‘깝치지’말자 생각했다.

세상의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열심히 살고 있다.



짧은 소설을 한 편 올리고 싶었지만, 요 며칠간 양쪽 손목 다 말을 안 들을 만큼 아파서 그냥 ‘때려치웠다.’

얼마간은 읽고, 생각하며,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꿈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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