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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r 21. 2020

너 따위에게 지지 않는 법1.

책상 앞에 '똑바로' 앉다.

너따위에게 지지 않는 법 1. - 책상 앞에 ‘똑바로’ 앉다.


지난 글에서 너따위에게 훼손당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나는 여전한 통증과  ‘괜찮다’ 마음 먹었다가도 뾰족하게 올라오는 불안을 밟아 누르며 살고 있다.


그때마다 소리를 내어 말을 꺼냈다.     


“너 따위에게 지지 않는다.”     




지방 소도시의 연립 주택, 그 안의 작은 방 하나가 내 공간이다. 내 소유의 아파트는 고사하고, 투룸 전셋집조차 갖지 못한 것이 <늙어가는 가난한 시골 글쟁이>의 가릴 것 없는 비루한 현실이다. 어떤 청춘이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의 표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라고 쓰는 글이니 그렇게 읽어 주어도 괜찮다.     


나는 재능이 있었으되 때를 만나지 못하였다느니, 혹은 꿈은 컸으나 노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였다느니 하는 지나간 이야기를 삐약 거릴 생각은 없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야말로 지난 일. 한껏 추억 보정 들어간 희미한 첫사랑 얘기처럼 맥없는 헛소리 아니겠는가.     


내가 지금부터 풀고 싶은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다.

사실 많이 쪽팔린 꼬라지를 (비록 나를 아는 이가 없다지만)굳이 세상에 드러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좌절 따위가 나를 훼손하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의 시작은 분칠하지 않은 나를 내가 바로 보는 것이었다. 


     


시작은 책상이다.     

내 방안에는 책상이 두 개가 있고, 한쪽은 노트북과 프린터를 놓았고, 한쪽은 사진 속의 저 모습이다. 

굳이 나누자면 한쪽은 디지털, 한쪽은 아날로그이다. 그러니까 사진속 책상은 아날로그 책상이다.


사진 최상단 빠꼼 보이는 지우개와 보드바카가 놓인 것 저것은 보안(?)상 전체를 공개하지 못하는 화이트 보드이다. 불쑥 떠오른 아이디어나 습작의 전체 그림을 마구잡이로 그릴 때 쓴다. 화이트 보드 아래에 드러난 클로버 무늬 벽지는 내가 이곳을 떠나 살던 시절에 모친의 취향대로 도배한 것인데 볼 때마다 그 촌스러움에 눈 앞이 아찔해 진다. 그러나  모친도 내가 모든 것을 후르르 찹찹 말아 드시고 다시 기어들어 올 지 몰랐을 것이고, 기어 들어온 주제에 도배지 타박할 염치도 없었으니 그저 볼 때 마다 ‘촌스러....’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좌측의 텀블러와 휴대용 티포트는 도서관 다닐 때, 필수품으로 들고 다니던 것들인데, 도서관의 잠정 휴관이 길어진 터라 먼지만 쌓이고 있다. 커피메이커는 뭐, 커피메이커이고.  그 옆 다이소에서 각 2000원 씩에 구입한 까망이와 하양이 서랍에는 스테이플러, 테잎, 메모지 등등이 들어있고, 그 위에 꽂힌 필기구들은 출처 다양한 저렴한 문구들이다. (문득 금장 두른 비싼 볼펜이 하나 사고 싶었는데 <개발의 편자>거나 <돼지목에 진주>라서 지금은 참는다.)     


아래쪽 하얀 통은 저 자리에 놓인 지 2년쯤 된 비타민이고, 그 옆에는 홍삼 캡슐이다. 생각 난 김에 이 글을 쓰기 전에 두 알 챙겨 먹었다. 나는 내 몸 하나 챙기는 그 쉬운 일도 하는 일 없이 늘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알록달록한 책갈피는 태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인이 선물한 것이고, 뚱뚱한 보조배터리는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얼마전에야 튀어나온 것인데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리고 스탠드와 독서대, 그 위에 놓인 책 한권이다. 


내가 저 책상 앞에 앉으면  책을 읽거나, 손글씨로 습작의 전체 그림을 마구잡이로 써내려간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휘갈긴다. 순서도 없고, 글씨는 겨우 나나 알아볼까? 크기도 들쑥 날쑥 순서도 중구난방이라 오른 쪽 ,왼쪽, 위, 아래가 없다.


이 책상은 남의 글을 읽으며 생각을 채우고, 혹은 부러워 하고, 그러다가 불쑥 내 글을 만들고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세상이다. 떠오른 무엇을 잊어버릴까, 예쁜 글씨 따위 신경쓰지 않고, 어떨 때는 미친 여자처럼 벙싯거리며 마구잡이로 화이트 보드 이곳저곳을 누비는 나의 세상이다.

         

오랫동안 이 세상앞에 앉지 않았다.

 



책상을 마주했다. 이것저것 뒤섞인 조악한 물건들과 모친 취향의 자기주장을 강하게 뿜어내는 클로버 무늬 벽지는 얄팍한 주머니와 빌붙어 사는  비루한 내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그 위의 화이트보드에는 미완의 설렘이 휘갈겨 쓴 글씨를 따라 제멋대로 남아있다. 방의 불을 끄고, 책상 위의 스탠드를 켜 놓고 잠시 책을 읽었다. 사진 속에 드러나지 않은 오른쪽 책장에 안 읽은 책이 탑처럼 쌓여있다.      

그러니까 어떤 것에 대한 목마름과, 그리고 아직 남은 설렘과, 그럼에도 엄두가 나지 않아 눈 감은 것들, 그리고 아무리 포장해도 조악하고 짠내나는 비루함이 저마다의 이름으로 나의 책상 위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꿈이 있으니 괜찮다는 소리는 아니다. 괜찮지 않다. 다만, 화이트 보드를 바라보면서 주책없이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쌓여있는 책 안의 다른이의 세상이 궁금하고, 그 세상이 나보다 나은지 슬쩍 전투력도 올라온다. '그래, 어디 한 번 보자. 세상에 나온 너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 우습고 민망한 나 혼자 전투태세다. 대부분은 끄덕이다 무릎꿇기 일수지만.


그리고 홍삼캡슐을 입에 털어넣었다.      


책상이 시작이다. 모든 것이 뒤섞인 나의 책상 앞에 이제 겨우 똑바로 앉았다.


          



작년 가을에 만난 친구는 내가 집을 사면, ‘스타일러’를 선물해 주기로 했다. 

‘내가 이 나이에 집도 절도 없이....’ 라며 하소연을 했었거든.

친구는 뻔한 위로 대신 대뜸 옷 욕심 많은 내 취향을 저격해 들어오며 ‘스타일러’를 입에 올렸다. 빨리 집을 사서 자기 지갑을 털어가라고 했다. 빈말이라도 찡하게 고마웠다.

‘아직도 글 타령 하면서 살면, 어디 집은커녕 밥이라도 먹고 살겠냐?’ 라는 뼈아픈 조언(?)대신, 스타일러를 사주겠다는 허세가 오히려 고마웠다.     


나는 소박하게, 현재에 만족하며 살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집도 사고 싶고, 매끈하게 뻗은 새 차도 사고 싶다. 그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의 전제에 ‘글’이 있는 것이다.수시로 답 없는 길 위에서 좌절하지만, 그래도 걷는 것이다.     

좌절 따위에 지지 않고, 현실에서도 도태되지 않으면서 제발 모친 취향의 클로버 무늬 벽지에서 벗어나려 한다.                          


*‘너따위’ 시리즈는 얼마간 시리즈로 이어갈 생각입니다. 

저는 '스타일러'를 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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