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jak Jan 05. 2021

그럭저럭 제멋대로 살았다.

이제 제대로 제멋대로 살 것이다.

 

호수를 산책하려고 일부러 운동복 차림으로 집에서 나섰지만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바람을 맞자마자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제게 운동은 가만히 있다가 화석처럼 죽을까봐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일이기에 살을 에는 바람을 극복하며 운동할 의지는 없습니다. 그래서 운동 대신 글을 씁니다.       




저는 상업고등학교 출신입니다. (https://brunch.co.kr/@choizak/168  글 참고.)


그래서 주산, 부기, 타자 등을 배웠습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계산기를 쓰고 작은 사무실에도 대부분 컴퓨터가 보급된 다음이었을텐데 그 시대의 교육이 그러하듯 역시나 시대에 뒤떨어진 교과목으로 성적을 매겼습니다. 심지어 각각 2급에 해당하는 자격증을 못따면 해당 과목의 시험 점수는 50프로만 반영됩니다. 100점 맞아도 50점인거에요. 아니, 기본점수를 포함해서 70점 정도 였나요?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저는 손이 느린 아이였습니다. 가정형편 운운하며 상고로 진학했지만, 실은 공부하기 싫어서(특히 수학이 싫어서) 그랬던, 밑바탕의 의도가 불순했던 터라 적성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주산, 타자 이런 과목은 낙제수준이었지요. 부기는 좀 괜찮았아요. 말 그대로 장부를 기장하는 건데 손보다는 머리를 요하는 과목이었습니다. 나름 제가 머리는 좋은편이었거든요. 허나 이것도 자격증 취득을 하려니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부기 자격증 시험을 보러가서 계산을 주판으로 해야 했거든요. 망한겁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남들보다 훨씬 늦었지만,자격증은 땄습니다. 제가 무려 주산, 부기 2급 있는 사람입니다. 유물과 같은 자격증이지요. 그런데, 타자는 끝내 못땄습니다. 손이 너무 느려서요.   


아무튼 당시의 저는 주판 하나를 놓고 타르륵~ 털고나서 주판알을 톡톡 튀기며 억단위까지 가.감.승.제를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차변과 대변이라는 희한한 말을 착착 알아듣고 각각의 계정과목을 맞는 항목에 집어넣어서 장부결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타이핑은 정말 느려 터져서 내 손은 눈에 안보이는 어딘가에 선천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하면, 주판을 눈앞에 둔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한번 익힌 기능은 몸은 기억한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기억 못합니다. 부기요? 그게 뭐에요? 심지어 제가 한때 세무사 사무소에서 1년 가까이 근무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사연이 깊지만, 패스.) 그 때도 장부기장이 주 업무였음에도 지금 1도 기억 안납니다. 자, 타자는 어떨까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독수리 타법도 아니고, 심지어 오타도 별로 없어요. 그리고 빨라요. 


일단 글을 쓰려니 타이핑을 해야했습니다. 게다가 소싯적에는 삘 받아서 하룻 밤에 서른장씩 초고를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손이 생각을 못 따라 오는 거에요. 그걸 맞추려고 몸이 알아서 따라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익숙해지고 몸에 익었습니다. 주산과 부기는 제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 시절 저를 괴롭히던 타이핑은 제 일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책을 좀 읽고 있어요. 주로 고전과, 인문서적에 몰빵중입니다. 이건 사실 비밀인데, 제가 좀 무식해요. 어린시절에는 마음껏 서포트 해주기 어려웠던 가정 형편, 성인이 되서는 술에 미쳐서^^ 다양한 책을 접하고, 다양한 지식을 접할 기회를 허랑허랑 흘려보내다 보니 기초지식이 좀 없습니다. 쪽팔려서 아는 척 하고 대충 넘겼는데 글을 쓸때 한계가 보이더군요. 물론 고전을 읽지 않아도, 역사나 철학 같은 것을 몰라도 좋은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만큼 생각이 확장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이유로 뒤늦게 지식세탁 중입니다.          


제가 브런치를 당분간 쉰다는 말을 불과 며칠만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습니다. 심지어 요 며칠은 전보다 더 자주 올리고 있습니다. 뭐, 그래도 될것 같아서요.

사실 브런치가 일종의 도피처거나 현실부정의 도구로 쓰였습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한 날에도 브런치에 글 하나 올리면  뭔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에너지를 꽤 소비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지쳐요.)     


그런데, 뒷맛이 영 찜찜합니다. 왜 그랬을까?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일은, 무섭잖아요. 그 탓에 우리는 종종 가벼운 일에 과몰입을 하곤 합니다. 지구를 책임지는 지구방위대도 아닌데, 쓸데없이 진지해지곤 해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대부분 그런 일들은 크게 책임질 일이 없어요. 법적, 금전적, 커리어, 어느 무엇 하나도요.  

   

제 경우, 밥벌이를 해야 하는 일, 다음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일들을 한 없이 미뤄두고 다른 딴짓거리를 찾았어요. 이 일들은 망하면 정말 망하는 겁니다. 굶어죽거나 앞날이 없거나. 그러나 딴짓은 안 망해요. 그래서 슬금슬금 미루고 딴짓을 하게 됩니다. 브런치에 비장하게 글을 올리고 댓글을 주고 받다보면 일을 하나 한 것 같으니 핑계대며 일을 미룹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브런치를 잠시 접고, 할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겁니다. 그런데 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변덕은 글쟁이의 미덕입니다. 저는 일관성이 없어요. 고칠 생각도 없어요. 뻔뻔.     




이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은 도피처가 아니라, 즐거운 취미로 생각합니다.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 아니니 즐겁게 쓰면 되는거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짓, 창작을 주로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더불어 저는 요즘 세가지를 같이 운용(거창하군요. 그러나 알게 뭡니까. 나라도 품나게 말해야죠.)하고 있습니다. 밥벌이로 쓸 수 있는 글, 내가 도전하고 싶은 글, 그리고 잘 모르지만 하고 싶은 글. 그 중 세번째 경우가 브런치에 올리려는 ‘소설 비스므리 한 것’ 입니다.  그래서 소설 비스므리는 어느정도 이야기가 꾸려지는대로 주 1회, 혹은 2회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얘기가 어디로 갈지는 저도 몰라요.아무리 미리 구성을 해 놔도 쓰다보면 인물들이 제 갈길을 가더라구요.;;;)     


세가지를 하루에 다 할 수는 없으니 그날 그날 한가지씩 몰입해서 하고 있습니다. 직장인처럼 짜여진 일상과 루틴이 있다면 체계가 잡히겠지만 혼자 알아서 해야하다보니 수시로 나태해지고 귀찮아집니다. 그러나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이제 리스크를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죠.     


돌아보면, 적당히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저희 엄마는 가끔 철지난 새타령을 하십니다. 뻔한거 그거 있잖아요.     


“직장생활 착실히 하다가 시집 가서 잘 살았으면 집도 사고 어쩌구 저쩌구....”     


어디서부터 반박을 해야 할까요? 일단 직장생활 착실히 부터 쉬운 일이 아니구요.

시집 가서 잘 살았을지는 또 어떻게 압니까? 남편이 폭력남편이거나, 내가 도박에 미치거나, 서로 바람이 났을지도 모르잖아요? 집이요? 나이 마흔 줄에 월세살이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겁니다. 매 순간의 선택은 그 때의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기에 회한이 없을 수는 없지만 반대의 경우가 꼭 꽃길은 아니었을겁니다.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조금 더 격렬하게 제멋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직접찍은 생선 사진, 사진 우측 하단의 사람을 발견한 순간부터 그가 뭐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같은 생선도,  이렇게 각각 다른 모양으로 꺾여서 제멋대로 마르는 중인데요. 뭘.



덧.

좋은 책좀 추천해 주시겠어요? 제가 좀 무식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가 좋아하지 않는 글을 쓰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