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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an 15. 2021

아니, 돈도 안 되는 그깟 글을 뭐하러 쓰나?


며칠 전, 차에 주유 경고등이 들어왔습니다. 분명히 반절 정도 남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사이 시간이 훅 지난 모양입니다. 아무튼, 가까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로 하고, 주유소로 갔습니다. 기름을 넣고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좀 사고 작업실로 들어와 그날 해야 할 몇 가지 일을 할 생각이었죠. 주유기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이 달려와서는 창 너머로 뭐라 뭐라 하는 입 모양이 보입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창문을 내리니, 직원이 난처한 얼굴로 지금 휘발유가 떨어져서 주유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뭐라구요? 주유소에 기름이 없다구요?     


어쩔 수 없이 다른 주유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주유 경고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긴 했지만, 이럴 때도 몇 키로 정도는 갈 수 있다고 알고 있고, 설사 길에서 멈췄다 해도 보험 부르면 되니까요. 살아보니, 일상에서 영화처럼 극단적이고 막막한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더라구요. 조금 더 가서 다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지척에 제가 산책하던 호수가 있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이고, 그날따라 대충 끼어 입고 나오느라 티셔츠에 롱스커트 차림에 짧은 패딩을 입었습니다. 운동하기도 애매하죠. 그런데 그대로 돌려서 작업실로 가기는 싫어졌습니다. 운동 싫어하고, 게으른 저의 성정 상 이 겨울이 지날 동안 언제 또 호수를 찾겠나 싶어서요.     

유독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스커트 자락을 팔랑거리며 걸어도 별로 춥지도 않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계속된 지독한 한파 때문에 호수가 꽁꽁 얼었는데, 그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집니다. 정작 그 풍경을 보는 지금은 따뜻하구요.            


   

하얀것이 전부 호수, 가운데 저것은 호수 안의 섬.


호수로 가길 잘했습니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은 곳에서 엉뚱한 뜻을 만나기도 합니다. 살면서 주유소에 기름이 없는 경우가 몇이나 되겠어요. 그러니 당연히 있을 것이라 믿는 많은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니고, 꼬인 계획이 꼭 나쁜 결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설이 안 팔리는 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전만큼 책을 안 읽고, 그중에서도 소설은 더욱 안 팔리는 책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웹상의 글도 비슷합니다. 긴 글을 싫어하고, 무거운 글을 싫어합니다. 그런 시대에 소설도 아니고 소설비스므리한 것을 쓴 저는 속된 말로 삽질 중에서도 개삽질입니다. 숨 막히게 잘 쓰는 소설가가 쓴 글도 외면받는 시대에 서툴고 어설픈 글로 뭘 어쩌겠습니까. 브런치가 좋아하지 않는 글을 쓰겠다. 라며 호언장담했지만, 실제는 독자가 쉽게 읽기 어려운 글이고 게다가 완성도마저 떨어진다면 그저 공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 글입니다.     


저는 지난 며칠 동안 소설 비스므리한 것 <그 동네 꽃마담>을 쓰느라 손목이 말씀이 아닙니다. 그거 쓴다고 몇 시간씩 버티고 앉아서 쫄쫄 굶은 적도 있습니다. 업로드를 하고 고개를 드니 어질어질 하더라구요. 그럴 때면 '아니, 내가 이게 무슨 지랄인가' 스스로 어이가 없기도 했지요. 게다가 냉정하게  봐서 완성도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그런 글인데도 마음씨 좋은 독자님들은 좋은 댓글도 남겨주시고 라이킷도 눌러주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라이킷 하나에 10원, 댓글 하나에 100원이라면 어떨까요?     

이 글을 잘 읽었으니 10원어치만큼의 표시, 혹은 100원어치만큼의 표시를 남겨 달라고 한다면, 제 글에는 몇 개의 라이킷과 댓글이 달릴까요?     


휘잉~ 찬바람이 불겁니다. ^^     


냉정하게 제 글이 돈 내고 볼 글은 아닙니다.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왜 <돈도 안 되는 그깟 글>을 미친년처럼 손목 나가가면서 밥 굶어가면서 썼을까요?      


그 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서요? 누가 물어봤다면 당연히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답변을 하겠지요.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즐겁지도 않은 일을 미쳤다고 자발적으로 하겠습니까. 저는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실 저는 스스로 포기 병에 걸렸었습니다. 각종 공모를 준비하다가, 혹은 어떤 기회가 닿아서 뭔가를 시작했다가 나 혼자 지레 포기해 버리는 일에 습관처럼 길들여졌습니다. 용두사미라면 꼬리라도 있죠. 이건 꼬리도 없습니다. 그 세월이 길다보니 저는 포기에 익숙해지고 대충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비스므리한 것> 이라는 프로젝트(너무 거창한가요?)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공간에 창작글을 올린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 전에 어딘가에 쳐박혀 있던 글을 꺼내서, 먼지를 툭툭 털어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한호흡으로 이야기를 끝낸 적은 처음입니다.  


<그 동네 꽃마담>이라는 제목은 오래 전부터 썼던 제목입니다. 엄마와 자식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고, 내용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간판만 그대로고 내부 인테리어는 계속 바뀐 격입니다. 이번에도 기존의 내용에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엄마. 딸. 다방. 실종. 옆집 오빠. 아줌마.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정도의 키워드만 가지고 시작한 글입니다. 많이 부끄럽지만 거의 초고 상태로 올라간 것은 중간에 포기하는 징글징글한 병을 고치기 위해서 제가 내린 선택입니다. 그나마 다듬고 고치고 하는 과정에서 또 나자빠질 위험을 생각해서요. 전체의 줄거리는 대충 구성이 되어 있었지만, 매 회차 스토리의 디테일은 쓰는 그 순간까지 저도 모르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이런 썰은 굉장히 잘 된 작품을 놓고 ‘인물이 알아서 움직였어요. 홍홍홍.’ 해야 폼이 나는 건데, 정말 울퉁불퉁한 글을 놓고 이러고 있으니 민망합니다만, 이왕 꺼낸 이야기니까 끝까지 가겠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매 순간에 집중해서 어색하지 않은 인과관계로 끝을 맺자. 딱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그대로 했습니다. 구성을 꼼꼼하게 살피고, 대사를 더 정제하고, 적절한 곳에 반전과 복선을 심고, 이런 모든 것들을 세세하게 살피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몰아치듯 써서 끝내는 것이 이번 작업의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저도 몰랐던 글이 끝났습니다.


약간은 작고 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저의 <그 동네 꽃마담>은 이제 제 손으로 더 다듬고, 이야기를 확장하고, 두툼하게 옷을 입혀가며 성장시킬 일이 남았습니다. 그 과정은 괴롭고 지난하겠지만, 또 성과가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않아도 갈 길은 가게 되어있으니까요. 살다보니 주유소에 기름이 없는 날도 있는데, 뭔들.     

    

많은 분들이 글쓰기는 치유라고 합니다. 저야말로 병을 고치려고 글을 씁니다. 자포자기, 제풀에 지쳐 대충 끝내기, 나 몰라라 쌩까기. 등등...오래 앓아온 중병을 고치려고 글을 씁니다.     

물론, 완치는 아직 멀었습니다.


저는 돈도 벌지 못하는 그깟 글을 쓰느라 며칠 동안 미치게 즐거웠습니다.     

다음에는 읽는 분들도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조금 잘 익은 아이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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