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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an 12. 2021

도서관과 캔커피, sorry.

이것은 옛날 옛적에, 내가 무려 이십대 초반, 대학생이었던 그때의, 그야말로 까마득한 기억의 소환이다.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 하면 발이 문제다. 내내 나와 함께 하시는 중인 이명은 오늘따라 데시벨을 살짝 올리셨고, 덕분에 잠이 오질 않는 판에 발가락까지 쑤셔대니 편한 잠은 글러먹었다. 발? 그래서 발에 대한 잡담이나 한번 해보자고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나서 글을 시작했다. 사용 중인 노트북은 작업실에 두고 왔으니 어쩔 수 없이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전에 쓰던 고물 노트북을 꺼냈다. 느려 터져서 끝까지 쓸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따라서 여러모로 이 글은 흘러간 옛 시절의 집합체이다.




때는 여름 , 아마도 1학기 기말고사 시즌이었을 것이다. 햇살이 쏟아지던 오후, 쨍한 날씨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도서관 열람실에서 코를 박고 있었다. 시험은 코 앞이었고 평소에 준비 같은 것은 해 놓았을 리 없었으니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 시절의 대학 도서관 열람실은 딱딱한 나무 의자와 칸막이형의 좁은 책상이 숨 쉴 틈 하나 없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는 경직된 공간,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여름철이니 냉방을 틀기는 했겠지만 시험기간을 맞아 그 안에 들어찬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체온과 학구열(?)로 열람실 안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용광로 한가운데서 생수와 음료로 목을 축여가며 가열차게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콤콤한 무엇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게 뭐지? 갸웃 갸웃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누군가 몰래 음식물을 숨겨 들어왔나?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던 차에 '어디 걸리기만 해봐라, 너는 오늘 제대로 된 지랄이 무엇인지 생생히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칼을 박박 갈며 주위를 살폈으나 음식물은 커녕 모두가 코를 박고 책만 파고 있었다. 콤콤함의 근원은 찾을 길이 없고, 한번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니 집중은 물 건너 갔다. 그 순간 번뜩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답은 위가 아니라 아래였다. 시선을 책상 아래로 돌리자 해답이 그곳에 있었다. 바로 내 앞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더위를 참지 못하고 신발과 양말을 벗은 것인데 그가 꼼지락 꼼지락 발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그의 짙은 향기가 공기 중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원인은 찾았지만 이것 참 난감한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겁나는 게 없던 강아지 마이웨이 시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용한 열람실에서 열공중인 학우에게 ‘너 지금 발냄새가 무지 하게 많이 나니 좀 꺼져주실래요?’ 라고 외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노트 한 귀퉁이에 메모를 남겼다.


<죄송하지만, 신발 좀 신어주시면 안될까요?>


그리고는 혹시 그가 무안할까봐 자리에서 일어나 칸막이 너머로 메모를 툭 던지고 나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도 들르고, 나온 김에 친구와 잠깐 수다도 떨다가 이쯤이면 서로 덜 무안하겠지 싶을 때 쯤 자리로 돌아갔다. 들어오면서 스캔했더니 앞자리의 남학생은 자리에 없었다. 민망해서 어디로 가버렸던지 화장실에서 발이라도 씻나보다 생각했다. 서로 마주치지 않을테니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책상 위에 캔 커피 하나가 놓여있었다. 읭?


이것은 또 무슨 낭만인가? 사실 그 시절이라 함은 도서관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면 책상 위에 캔 커피 하나쯤은 놓여있고 그렇던 시절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걸 또 바로 또각 따서 먹으면 모양이 빠지는 법이다. 무심한 척 슬그머니 한쪽으로 스윽 밀어놓았다. 그런데 그 옆에 곱게 접힌 메모지가 보였다. 역시 무심한 척 시크한 눈빛과 손길로 메모지를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포커페이스고 뭐고, 무심이고 나발이고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열람실 밖으로 튀어나가야 했다.  


발그림이 포인트인데, 다른 의미의 발그림이라....


당시 쪽지의 재연이다. 그때의 그림은 발 모양이 매우 정교하고 분명했으나 나는 손이 없고, 발만 네 개의 소유자라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발그림으로 대신한다.




지금은 어디선가 구수한 중년으로 살아가고 계실 그 시절 남학우님, 날아든 쪽지를 받아들고 꽤나 무안 했을 텐데 캔커피와 함께 진솔한 사과를 전했던 푸릇한 순수가 떠올라 비싯비싯 웃음이 난다. 그 정도 위트라면 어디서든 부드러운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상념이 깊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여기저기 쑤시는 법이다. 그것이 발이었다가, 어딘가 묻어둔 회한이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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