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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an 20. 2021

흐르게 두세요.

머리끝이 많이 상했다. 머리를 감고, 말릴 때마다 손끝에서 엉키고 난리도 아니다.

끝을 조금 잘라내야 했다. 지난번에 머리를 했던 미용실에 갔더니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발길을 돌려 근처의 다른 미용실에 들어갔다. 처음 가본 곳인데, 끝 부분 1센티만 잘라낼 것이라 뭐 크게 망칠일은 없지 싶었다. 물론 슬금슬금 2센티 쯤 잘라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하고 각오한 바이다. 항상 미용실에서는 원하는 것보다 더 자르고, 세탁소에 바짓단을 맡겨도 원하던 것보다 짧아져서 돌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나의 이만큼과 당신의 이만큼이 같지 않으니. 정확한 수치를 지정해서 알려줘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원하는 것보다 늘 적게 부른다. 혹은 조금 더 없어져도 썩 서운하지 않을 것들일 때 어느 정도 느슨한 마음으로 내맡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한 머리카락 같은 것들.      


흰머리가 불쑥 많이 늘었다. 한 1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인데, 주로 앞부분에 집중적으로 옹기종기 흰머리들이 들어앉았다. 미용실의 큼직한 거울에 비친 적나라한 모습을 보니 한숨이 포옥 나온다. 머리를 자르던 원장이 답답하세요? 하고 묻는다. 아니요. 흰머리 때문에 심란해서요. 근데 늙음을 어찌 막겠어요. 그러게요.


이제 뻔하디 뻔한 신상조사가 들어간다. 일단, 싱글임을 알아낸 미용실 원장이 대뜸 매파로 빙의한다. 남자는 고등학교 선생님이란다. 집도 부자란다. 그런데 안 간단다.  몇 살인데요? 서른여섯. 훗. 애기네요. ^^ 어머, 언니 몇 살인데요? 마흔 하고도 몇 살 입니다만. 세상에, 언니 동안이다. 코로나 때문에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렸으니까요. 이번에는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남자도 있단다. 이 분 본업이 뭐지? 됐습니다. 갈 거면 진즉에 갔겠죠. 10년 전쯤에. 이제 와서 뭐하러요. 어머, 능력 있으신가 보다. 이럴 때 쓸데없이 솔직할 필요는 없다. 혼자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데(실제로는 종종. 많이. 지장이 있다.)같이 먹고 살기는 뻑뻑하죠. 남자 돈으로 먹고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 생각한다. 고로 이건 진심이다.) 그러니 비슷한 것들 둘이서 굳이 만나서 궁상떨 필요는 없죠. (이 말은 안 했다.) 저는 연하가 좋은데, 연하는 내가 좋을지 모르겠네요. (이건 순도 백 프로 진심)     


언니, 영계가 좋구나?     


이 미용실 다시는 안 와야지. 졸라 피곤하네. 게다가 영계가 뭐냐, 사람더러.     




얼굴이 노래졌다. 이것도 최근에 안 사실이다. 내 피부톤은 백옥은 아니겠지만 점박이 무늬 백자 정도 되는 흰 피부였다. 그런데 노래졌다. 노화의 현상인가 싶어서 괜히 심란해졌다. 원인을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다가 최근에 무슨 변화가 있었나 되짚어봤다.    

  

루테인.


눈이 쉽게 피곤해지고 초점도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한 달 전쯤부터 눈에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폭풍 검색 결과 루테인 영양제의 성분 중에 일부가 피부를 노랗게 하는 부작용이 있단다. 결국 노화 때문이 맞는구나. 눈을 지킬 것인가, 미약한 흰 빛을 지킬 것인가. 그래도 아직은 하얀 피부가 더 소중하다. 사놓은 것만 다 먹고 끊어버려야지.




사실 흐르는 물을 어찌 막을까. 흐르게 둬야지.

다만, 이리저리 굽이치는 세월, 여기저기 막힌 물꼬나 터주면서 죽죽 바다로 가게 두려고 한다.

흐르는 물길을 부여 잡으려 애쓰고 막아봐도 고이고 썩을 뿐.

기왕 흐르는 세월, 막힘없이 제갈길로 찾아가길 바랄 뿐이다.      



날이 너무 따뜻해서 오늘도 호수를 걸었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어르신들이 많다. 그 무리 안에 내가 섞인 기분이 영....

개 끌고 다니는 훈남은 오늘도 안 보이는구나. 괜히 섭섭하다.     

 

              


이 글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야말로 잡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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