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 관해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애가 왜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니? 그것도 요즘같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 생각과 회화 작품이 압축된 물질로 매만져지는 기쁨이 있었다. ‘예술가’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닐까. 텍스트를 만지는 일이 어느덧 좋아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물론 잘하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일치는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2022년 개인전에 맞춰 발간한 서간문 이후로, 줄곧 다음 책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먹기’라는 주제 안에서 ‘계란 프라이’라는 소재로 회화 작업 외의 다양한 작업을 하며 온/오프라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새로운 사람과 관계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피곤한 일이라고 하던데, 나에겐 에너지가 생기고 활력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쓴 『Pop the Egg!』를 직역하면 ‘계란을 터뜨려!’이다. 계란을 터뜨리면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터진 계란이 어떤 요리로 탄생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모습도 생각도 다른 사람들로 가득하다. 문득, 나와 다른 혹은 비슷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참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소, 사람, 예술 작품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세상의 좋은 것을 참고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보다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은 내 인생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참고하다’라는 동사의 사전적 의미는 ‘살펴서 생각하다’이다. 연령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서 생각하다 보면 어느덧 내가 더 커져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은유 작가님이 쓰신 『크게 그린 사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인터뷰가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혹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사람을 보지 못한다. 세상이 축소해서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좋은 인터뷰는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하는 것 같다.” [1]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고 성장하는 나라는 사람에게 누군가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 공부이다. 이렇게 『Pop the Egg!』프로젝트는 시작되었고, 나의 SNS와 지인, 매체를 통해 만나고 싶던 사람들을 모집, 섭외했다. 참고하기를 즐기는 나는 듣는 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꽤 잘 듣는 사람인 것 같다. 인터뷰라는 형식은 인터뷰어의 질문과 해석 능력에 따라 그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일이 나에게 큰 부담과 도전이 되었다. 내가 잘 듣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인지는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의 질을 떠나, 잘 듣기 위해 10명을 만났다. 내가 터뜨릴 10개의 계란으로 어떤 요리들이 가능할지 궁금해하면서. 2023년 가을, 각자의 목소리를 내주신 10명의 인터뷰이의 용기에 감사드리며,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혹은 안 보이던 이야기가 전달됐으면 한다. 나의 인생에도, 당신의 인생에도 좋은 참고 사항이 생기기를 바라며.
2024년 여름
최경아
[1] 은유,『크게 그린 사람』, 한겨레출판, 2022,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