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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Dec 04. 2020

사소한 매너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두 번째 이야기)

주유소에서 벌어진 일

 차량에 주유하러 집을 나섰다. 평소 이용하던 주유소가 아닌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주유소에 갔다. 아무래도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앞으로 단골로 방문할 예정이었다. 먼저 차를 주차시킨 후 주유 옵션을 결정했다. 마침 ‘XX 페이’가 되어서 반가운 마음에 ‘가득 채움’으로 선택하고 결재 후 주유를 시작했다. 사전 보증금으로 12만 원의 금액이 휴대폰 메시지로 왔다.


 마침내 주유를 끝마친 후 주유 노즐을 주유기에 걸었다. 자동으로 사전에 결재한 보증 금액이 취소되길 기다렸다. 그런데 스마트 폰에는 아무런 알림이 뜨지 않았다. 주유기 화면에서는 뭔가 결재를 다시 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결국 호출 버튼을 누르니 직원이 나왔다.


 “저, 가득 채우기로 결재를 이미 했는데 주유 후 결재 수정이 안 되네요.”

 (직원은 다소 귀찮은 표정으로)

 “그냥 화면에 나오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미 결재하고 주유했는데 또 해야 하나요?”

 (또다시 직원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그냥 화면에 나오는 대로 하면 됩니다.”  


 이어서 직원의 구체적인 설명을 기다렸는데, 그냥 화면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말을 반복했다.


 “아네, 한 번 더 결재를 하라는 것이군요. 이렇게 다시 결재하는 것은 처음이라서요.”


 전에는 ‘가득 채움’으로 사전 결재를 하고, 주유를 끝내면 자동으로 사전에 결재한 보증금이 취소되고, 결재 금액만 알려줬다. ‘XX 페이’라서 그런 것인지, 시스템이 바뀐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결국 다시 결재를 하니 이전 결재가 취소되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잘 몰랐네요.”


 직원은 별다른 말없이 다시 주유소 사무실로 사라졌다.


 만약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저, 가득 채우기로 결재를 이미 했는데 주유 후 결재 수정이 안 되네요.”

 “아네, 사전에 결재한 것은 보증금으로 건 것이고, 다시 최종 결재를 해야 됩니다.”

 “아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실수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너무나 훈훈한 이 광경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무리인가?


 그런데, 직원은 “그냥 화면을 보고 따라 하시면 돼요.”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반복했다. 날씨도 춥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나 같은 고객들이 전에도 있었을 텐데,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매뉴얼이 없었던 것일까?


 너무 많은 서비스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단지 최소한 설명만 하면 되는데 왜 그런지 잘 이해가 안 됐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현장을 자주 목격하지 않는가? 때로는 매뉴얼을 무시하고, 내가 편한 대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다. 아니면 그런 매뉴얼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매뉴얼이 없다면 편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주고, 심지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서비스업은 더욱 그렇다. 진상 고객을 만날 수 있고,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억지웃음을 지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뛰어넘는 사람들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린치핀》이라는 책의 저자는 그러한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누구나 자신의 일을 쉽게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저자는 자신이 잘 가는 커피숍에서 길게 늘어선 줄에 서있는데, 어떤 종업원이 손님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면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것은 그 종업원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 종업원은 그냥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면 되었다.


 이때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사장이 커피숍 장사가 잘 안 되어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과연 누구를 집으로 보낼까? ‘예술가’를 집으로 보낼지, 아니면 마지못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집으로 보낼지는 사장이라면 알 수 있다. 그만큼 남과 다르게 자신의 일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은 힘들고,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다. 나와 남을 차별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일은 단순한 작업(work) 아니고, '마음과 영혼'으로 일을 하면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분야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웨이터, 작가, 음악가, 간호사, 변호사, 이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서 예술을 찾았다. 일은 작업이 아니다. 작업은 마음과 영혼으로 하는 것이다.” - 《린치핀》중에서


 사소한 매너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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