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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ul 05. 2023

길이라는 것은 행복한 종합 병원이다

EBS 듣는 인문학 시즌 2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

지난주부터 동네 산책을 다니면서 점차 걷기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해서, 또는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밖에 나와서 무작정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제가 좋아하는 코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나단 코스 1, 2, 3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도로 건너편에 바로 탄천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횡단보도 하나 건너고 계단을 내려가면 꽤 긴 보행로와 자전거 전용 도로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20분 정도 길을 따라 걷다가, 주말에는 1시간까지 시간을 늘렸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하늘도 쳐다보고, 사람들도 구경합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저녁에 걷습니다. 아침에도 걸어봤지만 역시 걷기는 저녁 식사 후 8시나 9시쯤이 제게 제일 맞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사심을 갖고 걸었습니다. 제가 워낙 생맥주를 좋아하다 보니, 탄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사람들이 치킨에 생맥주를 마시는 것을 훔쳐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맥주 잔에 가득한 생맥주를 보면서 혼자 군침을 삼켰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혼자서 맥주를 마시는 분이 없으니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는 거기에 앉아서 혼술을 마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1주일, 2주일, 이제는 한 달이 넘다 보니, ‘아무튼 걷기’가 일상화되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8시, 또는 9시가 되더라도 바로 반바지에 가벼운 티셔츠를 걸치고 나옵니다. 치에 걷기 모드로 바꾸고 걷습니다. 아무래도 몇 km 정도 걷는지 확인을 해야 성취감도 있으니까요. 보통 평일에는 3km, 주말에는 5~6km 정도 걷습니다. 회사에서 걷는 것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11,000보 정도 걷고 있습니다.


시원한, 때로는 무더운 바람을 맞으면서 걸으면, 하루 동안 쌓인 ‘정신의 노폐물’이 땀과 함께 씻겨 나가는 기분입니다. EBS 채널에 윤고은 씨의 '북카페'를 듣거나 인문학 강의, 또는 오디오북을 듣습니다. 어떤 때는 그냥 곤충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걸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걷기에 진심인 분들(눈에서 광채가~), 커플로 사이좋게 손잡고 걷는 분들(표본이 적지만, 1% 비중), 가볍게 뛰시는 분들, 왕년에 운동 좀 하신 분들 등등.



모두가 각자의 목적을 갖고 걷습니다. 문득, ‘EBS 듣는 인문학 시즌2’에서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님의 첫 코멘트가 떠올랐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행복한 종합 병원이다”라고요.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도 몸도 ‘정화’되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서명숙 이사장님은 잡지사, 인터넷 신문사의 치열한 세계에서 20여 년 간 미친 듯이 일만 하다가, 번아웃이 왔고 결국 퇴직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라서 한 달간 무작정 걸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걷다 보면 지쳐서 쓰러져서 누가 옆에서 코를 골든 말든 상관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음과 몸에 쌓인 때를 벗겨내고, 고향인 제주도에 올레길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어떤 영국 여성의(그분도 번아웃으로 퇴직 후 걷고 있었습니다.) 자극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한국에 수 차례 갔는데, 한국 사람들은 참 불행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국에는 공원도 없고, 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술을 왜 그렇게 마셔대는지…”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산티아고와 같은 길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아쉬웠던 ‘물’을 제주도에서는 마음껏 볼 수 있고,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걷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바로 제주 올레길의 탄생입니다. 그야말로 미국 서부 시대와 거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잊힌 길을 찾기 위해서, 동네 주민들에게 수소문하고, 가시밭길을 헤쳐서 길을 만들었습니다. 길을 만들고 나서야 주민들도 그곳에 길이 있었음을 상기했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저도 제주도 올레길을 6시간 정도 걸으면서 힐링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 달간 걸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요새 주변 분들에게 추천하는 운동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걷기'적어도 30분 이상, 그리고 ‘수영’입니다. 하지만 수영은 아무래도 공간적인 제약이 있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운동화만 신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지만 누구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걷기‘입니다.


오늘부터 10분, 20분, 30분씩 건강을 늘려서 건강을 되찾길 바랍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지니까요.


출처 : 동네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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