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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Jun 16. 2020

구글 번역기로는 따라올 수 없는 나만의 스페셜 언어

“헬로?" “니하오” “곤니치와” “안녕하세요?” 


이제는 굳이 공부를 안 해도 구글 번역기나 스마트폰의 내장된 번역기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아버지도 혼자서 남미를 3주간 여행하셨는데 구글 번역기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다해서 큰 불편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최신 스마트폰 중에는 외국어 메뉴판을 찍어도 한국어로 해석해준다고 한다. 점점 더 외국어를 배울 필요 없다는 얘기도 있다. 앞으로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가 더 발달한다면 번역 기능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이미 단순한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언어를 이해하고 번역을 해준다고 한다. 나도 외국어 공부를 할 때 가끔씩 번역기를 사용하는데, 생각보다 번역 수준이 좋은 거 같아서 놀랄 때도 있다. 
 
기계 번역의 발달로 10년 안에 언어장벽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물론 번역기의 발달로 불편한 점이 많이 사라지고 언어의 장벽은 낮아지겠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기로 번역된 외국어에는 언어의 ‘질’이 없다. 그냥 그대로 뜻에 맞게 번역을 한다. 예를 들어서 중국인 친구가 힘들어할 때 ‘찌아요우(힘내)’라고 무미건조하게 번역기로 얘기하는 기계어와 ‘찌아요우!’라고 감정을 담아서 얘기하는 문장의 ‘질’은 아주 다르다. 


번역기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 가능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어주기 위한 ‘감정’을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나 노래의 가사와 같은 느낌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물론 번역된 가사를 통해서 의미가 전달되겠지만, 노래는 그 나라의 언어로 불러야 제대로 된 느낌이 난다. 


미국의 음유시인이자 가수인 밥 딜런(Bob Dylan)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유도 그가 쓴 가사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번역 기능이 더 좋아지면서 이러한 언어의 ‘질’도 조금씩 나아지겠지만 ‘인간의 언어’와 차이를 완전히 메꾸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번역기를 통해서 얘기를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정확히 느낄 수 없다. 특히 언어에는 뉘앙스가 중요하다. 뉘앙스는 국어사전에서 ‘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 따위의 미묘한 차이. 또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느낌이나 인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메일을 보낼 때도 조심해야 되는 이유는 상대방이 행간의 의미를 잘 못 받아들여서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낌표, 물음표 사용도 조심해야 된다. 


따라서 중요한 얘기는 직접 만나서 하는 것이 낫다. 심지어 전화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과 직접 대면(Face to Face) 미팅이 나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아무리 바빠도 직접 만나서 얘기한다. 대화라는 것을 통해서 상호 교감을 한다. 


베스트셀러로 유명해진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서도 저자는 결국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라고 얘기한다. 언어에는 ‘깊이’와 ‘온도’가 있다.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넌 얼굴도 예뻐’라고 하려다 실수로 ‘넌 얼굴만 예뻐’라고 말하는 순간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번역기과 번역기로는 대화를 통해서 교감을 느낄 수 없다. 물론 상대방의 표정이나 몸짓을 보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수많은 정상들이 전화 통화를 해도 되는데 굳이 그 멀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서 미팅을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직접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대화의 뉘앙스를 느끼고, 어떤 사람인지도 느껴보기 위함이다. 비록 옆에 통역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언어를 직접 듣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또한 통역관들은 옆에서 통역을 하면서 단순한 의미 전달보다는 그 이면의 핵심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개봉되어서 인기를 끌었다. 처음 이 영화 제목을 접한 사람들은 공포 영화가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언어의 ‘질’과 ‘뉘앙스’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시한부의 여고생이 나중에 죽더라도 ‘너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라는 말을 빗대어서 얘기한 것이 영화의 제목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만약 이 일본 여고생이 한국 남성에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귀엽게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그것을 그대로 번역기가 해석을 한다면 그 남성은 줄행랑을 치거나 분명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모든 언어에는 나만의 말투가 있다. 끝을 내린다든지, 올린다든지, 내가 자주 쓰는 표현도 있다. 그것이 영어에서 ‘유 노우 You know’, ‘음 Uhm’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이 있다. ‘~해야 한다’라고 할 때 ‘have to’ 또는 ‘should’를 사용할 수 있고, 평소에 완곡한 표현인 ‘could’를 즐겨 쓸 수도 있다. 이러한 나만의 표현이 결국 나의 정체성을 얘기한다. 즉, 나만의 스페셜 언어가 있다. 그것을 번역기가 표현하기는 힘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언격’이라는 것이 있다. 나의 언어를 통해서 품격을 보여준다. 나만의 세련된 표현이나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언어 등이 모두 언격이다. 특히 한국어나 일본어 같은 경우는 존대어가 아주 발달되어 있고, 상대방에 대한 말의 예절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다 번역하기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사귀려면 우리는 많이 얘기해야 한다. 20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문학비평가인 레베카 웨스트(Rebecca West)는 “사람이 친구를 사귀는 데는 분명한 과정이 하나 있는데, 매번 몇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친구를 사귀려면 나만의 목소리와 진심 어린 눈빛을 보내야 된다. 번역기를 이용하다보면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술이나 한잔 하면서 인생 얘기를 하고 싶어도 번역기가 이러한 분위기를 깬다. 번역기를 통하면 내 목소리와 나의 뜻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만의 스페셜한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다. 언어에는 그만의 ‘질’과 뉘앙스가 있고, 나만의 표현, 언격이 있어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해준다. 이러한 언어를 통해서 상대방과 진정한 교감을 할 수 있다. 설사 그 표현이 세련되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나만의 외국어는 ‘나’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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