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어느덧 해가 뜨거워져서, 반팔 위에 셔츠를 입는 게 슬슬 부담스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잠시 이동할 일이 있어서 한남대로의 풍경을 구경하며 용산구를 벗어나던 참이었다. 가로수 사이 듬성듬성 숨어있는 저택과 사무실이 차의 양쪽 창문을 휙휙 지나갔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나와 관계없는 것들이라 느꼈는지, 풍경을 봐도 딱히 별생각이 없었던 때였다. 창문 너머 풍경이 흐릿하게 내 눈을 스쳐 지나갈 때, 오른쪽으로 버스 정류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 넘쳐나는 한남대로에서, 찰나에 그 버스 정류장은 나에게 유일하게 익숙한 장소로 다가왔다. 왜 하필 그때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고야 말았을까 싶고, 익숙하다는 게 곧 편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곱씹게 되었다. 언제였나, 겨울 어느 날 굳이 한강진에서 응봉산을 가려고 그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왜 하필 응봉산이었냐면 그냥 대화 주제가 야경으로 흘러갔기 때문이었다. 반스와 워커, 패딩과 코트. 만약 혼자였다면 아무리 낮은 산이라지만 겨울에 그런 복장으로는 계단을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순천향대 병원 앞 도착 전이었나,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도중 길을 헤맨 탓에 애써 오른 언덕길을 다시 내려갔지만, 그래도 더 오래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만약 혼자였다면 겨울에 땀 차게 이게 무슨 짓이냐며 속으로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나름 적지 않은 곳들에 흔적들이 남아있다. 돌아다니면서 우연히 그 흔적들을 마주친다. 혹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도중 그 흔적들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가 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수 있는 나날의 기억들로 나의 서울이 조금씩 채워진 걸 상상하고 있자니 새삼 이 도시가 좁은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채울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흰색으로 남아버린 서울의 공간이 여전히 넓게 느껴질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