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해외 살기 1년, 기회와 가능성

내게 일어난 상황들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고 설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우리 부부는 당장 투자할 여건이 되지 않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우리는 이것을 투자 데이트라고 불렀는데 매물로 나온 집을 돌아보고 근처 맛집에 들러 음식과 디저트를 먹고 돌아오는 코스를 즐겼었다.

나는 이제 밴쿠버에 있고 한국과는 또 다른 부동산 시장이 내 앞에 펼쳐졌다.

지난번 집을 구매할 때는 일정이 빠듯하여 우리 가족이 거주할 지역의 타운 홈을 집중적으로 돌아보았다면 이제는 밴쿠버 지역 전반에 걸쳐 콘도, 타운 홈, 하우스 이 세가지 대표적인 거주형태를 모두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또 한가지 설레는 점은 내가 회사에 다닐 때는 주말 중 하루는 출근을 해야 해서 남편과 함께 집을 보러 다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그 길로 동네 탐방을 다녔는데 처음에는 관심지역 위주로 동네 분위기가 어떤 지, 편의시설은 잘 되어있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이후에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앞둔 분양사무소를 찾아다니며 직접 설명을 듣고 모델하우스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각종 투자세미나에 참석하여 부동산 현황 그리고 스카이 트레인 연장이나 의료타운 건설과 같은 굵직한 이슈들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더 이상의 투자금도 대출여력도 없었다. 마지막 남은 현금 자산이었던 퇴직금은 이미 밴쿠버에 집을 살 때 고스란히 들어간 상태였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투자는 여건상 우리가 상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주식을 하는 전업투자자처럼 계속 매달려 있을 필요도 없었다. 시장 상황을 주시하다가 자금이 준비되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잡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는데 나에게는 본업이 필요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를 위해 할 일만 하면 되었다. 이제는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주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할 시기가 되었다. 지금은 우리 부부가 둘 다 일을 하지 않고 자금 상황이 안 좋아지기는 했어도 당장 돈을 더 벌기 위해 섣불리 행동하지는 않기로 했다.

일을 계속 해오던 사람이 일을 멈추면 마치 담배를 끊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금단 현상 같은 것이 나타난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수시로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빨리 어디라도 들어가 일을 하거나 아니면 내 일을 시작해 수익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밴쿠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년이었다.

한정된 시간은 그 시간의 의미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해주었는데 우리 부부는 당장의 돈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가고자 하는 길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무료하지 않고 열정 가득한 삶을 사는 것이다. 당장 그 꿈을 이룰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최종 목적지를 향한 것이어야 했다.

당시 밴쿠버는 기회의 땅처럼 여겨졌다. 넓은 영토에 비해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집도 없었고 제대로 하는 곰탕집도 찾지 못했다.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도 선택할 옵션이 몇 군데 안되었다.

이곳에 살다 보니 뭐가 없고 느려서 불편함을 많이 느꼈는데 학원이든 병원이든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의 반절만해도 이곳에서는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 앞에 두 가지 길이 놓였는데 하나는 좋아하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돈을 잘 벌 수 있는 기회였다.

좋아하는 일은 남편이 밴쿠버에 오기전 취미로 시작한 가죽공예가 있었는데 그것을 비즈니스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는 당시 미지수였다. 그리고 돈을 잘 벌 수 있는 기회로 요식업을 생각했는데 우리는 요식업계 경험이 전무했기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당시 불안한 마음에 돈을 벌겠다고 나서지 않은 것은 성급한 내 성미에 정말 잘 한 점 중 하나였다. 1년간 번 돈은 하나도 없었지만 우리에게 맞는 길과 맞지 않는 길을 명확히 파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