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임신에 아들의 팔 부상까지 겹치면서 한동안 집과 병원을 자주 오가게 되었는데 그날은 오전에 아들의 병원 예약이 잡혀 있었다.
팔이 잘 붙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부러진 팔이 제대로 맞춰진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간격은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맞춰지는 경우도 있으니 일단 수술 없이 좀 더 지켜보자고 하였다.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곳이 한국이었어도 과연 이렇게 조치를 취했을까? 팔이 삐뚤어진 채로 붙어버리면 어쩌지? 나는 캐나다 의료시스템에 의구심을 가득 품은 채 병원을 나왔다.
오전 수업을 빠지게 된 아들을 학교로 데려다 주기 위해 우리는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와 출구로 향했다. 병원은 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길 어딘가 떨어져 있던 못이 우리 차 타이어에 박힌 것 같다. 처음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갈수록 타이어의 압력이 낮아지는 게 느껴졌고 차는 속력을 내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병원 밖을 빠져나와 도로 한가운데 있는 상황이었고 서둘러 차를 세울만한 곳을 찾았다. 급한 마음에 차를 구매했던 한국인 셀러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분은 출장 가능한 수리업체를 찾아 연락을 해주었고 우리는 업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아들의 학교까지 걸어서 40분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나는 아들을 데리고 천천히 학교로 걸어가기로 하고 남편은 남아서 출장업체를 기다렸다. 차 없이는 오도 가도 못하는 이곳에서 나는 아들을 데려다준 뒤 남편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국처럼 빠른 서비스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 알았으면 임신해서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끌고서라도 남편에게 걸어갔을 것이다. 몇 시간이 지나고 기다리는 것을 내려놓았을 때 즈음 신랑에게서 곧 출발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차에 놓인 영수증은 달갑지 않았지만 남편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갑고 또 한편으로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나오려 하는 것을 애써 참았다.
나쁜 일은 연달아 일어난다는 말은 당시 내게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이쪽저쪽에서 날아오는 펀치를 맞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 즈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닌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며 원망 섞인 야속함으로 누군가를 향해 외쳐 대었다.
나는 이런 갑작스러운 일들을 처리하는데 그다지 단련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간 내 삶이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긴 했어도 큰 사건사고 한 번 없이 무난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부정적 일들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자세에 머물러 있었다. 그간 해왔던 투자, 퇴사를 결정하고 해외 살기를 떠나기까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살아왔으면서 왜 내게 닥치는 상황들 앞에서는 그리 수동적이고 어찌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내게 닥치는 상황마저 나의 책임하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 문제해결의 열쇠가 쥐어지고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