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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니 Dec 12. 2023

생각과 감정의 힘-캐나다 병원 응급실

세입자와의 문제를 통해 내 삶에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를 파악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여전히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타인의 잘못이나 상황 때문인 것이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만 믿어온 내게 삶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셋째 임신으로 밴쿠버에 도착한 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했다.


임신 초기라 검사받을 것들이 많았는데 엑스레이, 초음파, 피검사 등을 각기 다른 곳에서 하다 보니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하고 여러 병원을 찾아다녀야 했다.


내게는 대학생 때 딴 운전 면허증이 있긴 했지만 한국에서 운전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이곳에 오기 전 잠깐 연수를 받은 게 전부였다.


나는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이곳에 온 뒤에도 임신했다는 핑계로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든 신랑과 아이들을 줄줄이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처음에는 가족이 다 함께 병원에 가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으나 땅이 커서 어디 건 차로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병원마저 데리고 다니는 것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임신 초기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를 찾아갔는데 갑상선 수치가 높다며 노산이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약 처방 없이 지켜보다가 차도가 없으면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또다시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내 몸에 대한 걱정보다도 병원비 들어갈 일이 생길 까봐 걱정이었다. 보험을 들고 왔지만 출산비용은 커버가 되지 않았고 임신으로 인한 검사비용도 일부에 한해서 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자국민이나 영주권자, 워크퍼밋 소지자에게는 의료가 무상이지만 외국인에게는 엄청난 의료비를 청구하기 때문에 이미 출산비용 만으로도 부담이 큰 상태였다.


나는 의사에게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는지 물었는데 의사는 일단 푹 쉬며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가 몇 년간 한 번도 끄지 않았던 새벽 4시 30분 알람을 처음으로 끄게 되었다. 그리고 내 몸이 자고 싶을 때까지 자도록 내버려 두었다. 몇 달 뒤 의사를 방문했을 때 다행히도 정상수치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하지만 마음 놓게 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다쳤던 아들의 왼쪽 팔이 또다시 부러지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일어난 일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부활절이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공휴일을 하루 더 쉬는 날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곳은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같은 공휴일이 되면 그 행사에 맞게 집을 꾸미고, 온 가족이 모여 특별한 식사를 했다.


우리는 이곳 문화를 배워가고 있었는데 부활절이라고 특별한 것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모처럼 다 함께 외식을 하기로 했다. 자주 외식을 한 것도 아니니 기분 좋게 먹고 나오면 되었을 텐데 그날따라 유난히 돈 쓴 것에 대해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애써 감정을 숨긴 채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내 육체적 피로감은 에고의 목소리를 더 부추겼는데 아마 그때 남편과의 대화보다는 아마 한숨 푹 자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잘 싸우지 않는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아마도 서로를 위하고 양보하느라 말다툼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일이 나려고 했는지 남편에게  아침 일찍부터 돈을 쓴 것에 대한 불편함, 돈을 벌고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편함, 앞으로 큰돈이 나갈 것에 대한 불편함 등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을 모두 쏟아내었다.


나는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불안할 때면 계획을 세우는 습관이 있었는데 아직 이뤄지지 않은 계획이지만 미래에 대한 밝은 그림으로 채워진 계획은 나의 불안한 마음을 재우는데 효과가 있었다.


그날은 종일 어두운 날을 보내다 오후 에야 기분이 좀 나아졌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바람 좀 쐴 겸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갔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던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기 시작했는데 큰 아들이 집라인을 타다 팔이 부러지게 되었다. 일요일 저녁에 일어난 일이라 대부분의 병원은 이미 문을 닫았고 우리는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아 응급실로 향했다.


신랑은 운전을 하고 나는 옆에 앉았는데 눈물이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이곳은 의료가 무상이지만 치료받으려면 대기자가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주말 저녁의 응급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발만 동동 굴렀다.


캐나다 의료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 순서가 결정되는데 부러진 아이의 팔은 순서를 조금 앞당겨 주었다.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고 수술 여부는 좀 더 지켜본 뒤 결정하기로 하였다. 밤늦게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을 재우고 침대에 누웠는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들이 한국에서 팔을 다쳤을 때 수술을 마친 아들과 병원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나는 삶의 중요한 메시지를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돈 걱정,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정작 메시지의 본질을 놓친 채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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