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지니 Jan 07. 2024

내려놓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다음날이 되었다. 반은 내려놓고 반은 기대하는 심정으로 의사에게 물었는데 또다시 안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무심하고 매정하게만 느껴지는 의사를 향해 “지금 병원비가 하루에 천만 원이라고요”라고 조용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의사는 병원비와 상관없이 아기의 건강이 우선이며 괜찮다고 판단될 때까지 이곳에서 내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나는 오직 병원비가 나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사는 우리 아기의 건강을 생각하고 있었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캥거루 케어를 하고 아기와 밀착되어 있다 보니 아기가 일찍 태어나서 작은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고 의사가 과잉 치료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의 말에서 아기의 건강을 생각하는 진심이 전해졌는데 내가 부모로서 올곧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병원비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의사의 결정에 따르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이제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의사가 오후에 아기를 일반병동으로 옮길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기뻤다.


이것은 내가 기존에 기쁨이라 생각했던 일들과는 분명 달라 보였다.


항상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얻어야만 기뻐할 줄 알았던 내가 기존의 것에 감사하고, 상황이 더 나아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내 안에 기쁨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내려놓고 집착을 하지 않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의 든, 타의 든 어떻게 든 내려놓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상황에서 풀려난다는 느낌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이번 상황을 통해 내가 내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의사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탁 내려놓게 되었을 때 완전히 내려놓는다는 게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 것인지 슬슬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듣기 좋게 말하면 인생의 게임과도 같고 그 반대로 표현하면 마치 인생의 숙제처럼 느껴진다.


인간관계, 자녀양육, 부부관계를 비롯한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상황은 인물이나 상황, 환경만 바뀔 뿐 삶은 결국 내려놓기 와도 같다.


한번 내려놓음을 경험하면 “다음번에는 더 빨리 내려놓고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야지.”라고 마음먹게 되지만 막상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내려놓음은 다시 학습되어야 할 과제처럼 또다시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내려놓음은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려놓음은 할 일은 하되, 오직 하나만 생각하고 집착하는 태도에서 다른 가능성을 받아들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을 의미한다.


내려놓음은 억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려놓은 척하는 것 또한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겉으로 태연한 척해도 내면에 무서움과 공포를 느끼는 자신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내려놓기 또한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 아주 작은 미련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시늉에 불과하다.


중요한 상황일수록 스스로의 힘으로 내려놓기가 힘든데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내려놓게 되면 상황에서 더 빨리 풀려나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잘 내려놓을 수 있을까?


부의 심상화나 끌어당김이 더 많은 부를 위한 방법이라면 내려놓기, 흘려보내기 등은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방법이었다.


부와 행복은 내가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가치였기에 제시된 방법들을 실천하고 내 삶에 펼쳐지도록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부와 행복을 위한 각각의 방법만 보았을 때는 마치 서로 다른 길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단 하나의 진리를 이해하면 내려놓기를 비롯한 끌어당김, 심상화 모두 우리가 자연스레 취하게 될 행동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단 하나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삶의 비밀에 굉장히 가까이 다가가 있었고 그 비밀은 고요한 밤 홀연히 내게 찾아오게 될 것이었다.


고통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신은 우리가 고통을 겪길 원하지 않고 너무나 사랑하시며 우리가 스스로 누구인지 알고 살아가길 원한다.


나는 내가 겪은 모든 고통의 원인은 나였으며 그것을 풀 해법도 내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 29화 캐나다에 온 뒤 생각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