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두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왔다. 그동안 어디든 함께 하며 똘똘 뭉친 우리 가족은 지난 이틀간 서로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았는데 어려운 순간 가족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의미를 행복한 순간 속에서 찾으려 하지만 한 가정의 삶에는 행복, 슬픔, 성취, 실패 등 다양한 순간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기가 병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편은 매일 미역국을 끓여서 병원으로 찾아왔는데 곁에 있던 큰 아들은 동생과 잘 놀아주었다며 걱정 말라는 표정을 지었고, 둘째 딸은 엄마 없이 울지 않고 잘 잤다고 수줍게 말했다.
우리는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 속에는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우리 부부가 고난의 시기를 겪을 때 그 속에 아이들도 함께 있었는데 아이들은 부모가 슬퍼하고 좌절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곧 다시 딛고 일어나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었다.
아기가 신생아집중치료실에 들어간 날부터 하루가 지날 때마다 병원비가 천만 원씩 올라갔다.
돈의 액수가 고통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백만 원을 잃으면 고통이 덜하고 일억을 잃으면 고통이 더 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룬 과정과 노력이 고통의 강도를 정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백만 원이라도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사고 싶고,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가며 남들 쉴 때 고생해서 번 돈이라면 그 돈이 한순간에 사라졌을 때 느끼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날이 기다려진다는 것은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며 잠들고, 직장인이라면 월급날 치킨과 맥주 한잔 할 생각에 전날 밤 기분 좋게 잠이 든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지불해야 할 돈이 또 천만 원 늘어난다면 내일을 기다릴 사람은 없다.
다 내려놓고 싶다는 심정이 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 의욕도 사라지는 법이다. 이제는 나에게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였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인생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밑바닥이라 느껴질 때 내리는 결정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생사의 기로가 될 수도 있고, 포기하거나 재기의 기점이 되기도 한다. 단지 한 끗 차이의 선택으로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 결정의 시점에 어느 쪽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더 우세한 지가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의 마음은 포기에 근접해 있었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남편이었는데 그는 나처럼 상황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그저 담담한 모습으로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 나갔는데 나는 그에게서 평소와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내가 삶의 기로에서 어느 길을 갈지 중대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남편은 아내가 소고기 미역국과 황태 미역국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런 상황이 괜찮냐 고 물었는데 남편은 아기가 건강하면 된 거라고 하였다.
똑같은 상황을 겪고도 이렇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를 수 있을까? 어쨌건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괜찮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그 순간에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포기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솟아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도 평소처럼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