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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니 Jan 26. 2024

캐나다 출산과 1억 가까운 병원 청구서

오후가 되자 아기는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6인실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하루에 천만 원씩 나가던 병원비가 하루 3백만 원으로 줄었고 아기 침대 옆에 내 간이침대도 하나 주어졌다. 이제 집과 병원을 오가지 않고 아기와 함께 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나는 집에 가서 세면도구와 옷 그리고 읽을 책을 몇 권 챙겼다. 남편, 두 아이들과 또다시 떨어지게 되었지만 다섯 식구가 이 집에서 하나 되는 모습을 그리며 집을 나섰다. 


첫째 날 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찬바람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환풍기가 얼굴 바로 위에 붙어 있었다. 집 천장에 붙은 환풍기도 바람이 세서 겨울에는 일부러 꺼 두었는데 이곳은 병원이라 끌 수조차 없었다. 아기를 낳고 뼈에 찬바람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연신 강조하던 엄마 말이 떠올라 코트와 티셔츠, 바지 등 챙겨간 옷을 다 끼워 입고 마지막으로 얼굴에 옷을 덮은 뒤 잠을 청했다. 더운 것은 잘 견뎌도 추운 것은 어지간히 참지 못하는 터라 밤새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일반병동을 회진하던 의사는 아기의 키에 맞는 적정 몸무게가 되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잠만 잤다. 보통은 아기가 잠들면 깰 까봐 조심하지만 나는 아기를 깨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아기를 일으켜 세우고 얼굴에 바람을 불어도 깨지 않았다. 모유 맛을 보면 배고파서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입가에 모유도 톡톡 떨어트려 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이지는 못한다’는데 그렇다고 마냥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기는 기저귀를 갈아도 깨지 않았는데 병원에 찾아온 남편이 옆에 놓여있던 물 티슈로 아기의 목을 닦아주자 그때서야 눈가를 꿈틀거리며 지그시 눈을 떴다. 


그렇게 간신히 모유를 먹일 수 있었는데 먹이는 과정마저도 수월하지 않다 보니 아기 몸무게가 잘 늘지 않았고 의사는 분유를 병행할 것을 권했다. 나는 마치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지고 모든 관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이 시기가 끝날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 아기가 깨지 않고 자는 덕분에 시간에 맞춰 모유와 분유를 먹이고 나면 나머지 시간에는 한동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 둘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IELTS 시험을 연기하는 것이었는데 원래는 출산 전에 보려고 신청해 둔 시험이었지만 이미 아기가 태어났고 병원에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시험을 보러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회진할 때 상황을 설명하여 의사 서명이 들어간 소견서를 받을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을 시험기관에 제출하여 시험을 한 달 뒤로 연기했다. 


또 그동안 병원의 재무 담당자와 병원비 정산과 관련하여 수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직접 병실에서 만나 병원비 납부시기와 방법을 조율하고 서류에 서명을 하였으며 병실을 옮길 때마다 거쳤던 의사들이 개별적으로 청구한 진료비도 처리해야 했다. 


합치면 1억 가까이 되는 청구서가 이곳저곳에서 날아오기 시작한 것은 분명 달가운 일은 아니었으나 이것은 병원에서 보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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