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음날 아기가 퇴원하게 되었다. 양수가 터져 응급실에 입원한 지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병원에서의 일주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데 충분했다. 일주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내게 있었지만 나를 바꾸려는 노력은 마치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졌고 드라마틱한 변화는 기대조차 하기 어려웠었다.
병원 문을 나섰는데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고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면에 일어난 변화의 과정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 당시의 느낌을 빌려 설명하자면 내면에 잠자거나 방치되어 있던 부분들을 누군가 하나씩 톡톡 건드려 일깨운 듯 느껴진다.
걱정, 두려움 대신 사랑과 감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수많은 결정들 앞에서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병원비와 진료비 등으로 1억 가까이 되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한국의 안정적인 직장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배짱인지 가죽공예 비즈니스를 시작하기로 하였고 우리 가족 모두가 원하던 대로 캐나다에 더 머물기로 하였다.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안 좋아졌지만 이상하리만큼 대범하고 용감했다. 이것이 병원 밖으로 첫 발을 내딛을 때 나의 모습이었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날 내 인생도 새롭게 시작되었다. 얼마 전 우리 막내가 4살이 되었는데 인생에서 나답게 살았다 하는 시간도 아이의 나이만큼 쌓여간다.
누구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 예전 같으면 취업이나 결혼, 출산의 순간을 들었겠지만 밴쿠버에 온 뒤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서인지 작은 일들까지도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한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막내를 출산했던 상황일 것이다. 그 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그 경험은 대단히 강렬했다.
당시 내면의 감정이 걱정, 두려움의 극단에 치달었을 때 어떻게 외부에 물리적 상황을 만들어 내는지 알게 되었다면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그와 정반대로 사랑, 감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게 되었을 때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사랑과 감사의 감정은 잔잔한 파도와 같은 것일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그 이상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