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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이시너드클럽 Sep 22. 2021

체내 잠복 중인 어떤 바이러스에 대하여

"가방 로우로우네?"


"어떻게 알았데?"


그런 때가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존재가 또 어떤 날에는 나의 날을 공유한 것마냥 익숙하게 느껴질 때가요. 내겐 미우나 고우나 두 살 터울인, 누나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서로 떨어져 살고요, 1년에 많이 보면 5번 정도 될까요. 그런데 무슨 일상을 염탐한 것처럼 너무나 어이없게 나의 것을 간파할 때가 있습니다. 하다 못해 어제 산 가방 브랜드까지도요. 심지어 저 가방은 예약 주문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니까요.


평소 이런 식의 표현을 할 일이 없는데 말이 나왔으니 기운 내서 해보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는 취향이랄까 문화적 감수성이랄까 누나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가수라곤 HOT, 젝스키스 밖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카디건스(The Cardigans), 크랜베리스(Cranberries), 자우림 같은 여성 프런트 밴드라던가 카니발(Carnival), 전람회 같은 전 세대 감성 그룹이라던가 마빈 게이(Marvin Gaye), 레이 찰스(Ray Charles) 같은 소울 음악 등등을 듣는 누나는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누나는 당시만 해도 비교적 품을 들여 찾아들어야 하는 음악 외에도 GOD 쳐돌이하던 시절도 있긴 했습니다. 덕분에 나도 GOD 노래 몇 곡은 몸으로 자동 재생할 정도로 익숙합니다.)


지금 와서 나열해놓고 보면 그리 특별한 것들도 아닙니다만, 당시에는 인터넷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내 눈에는 확실히 유별나 보였다니까요. 당시 나는 S.E.S 카세트테이프를 모으고 있었다고요.


어쩌면 그런 류의 취향이 어느 시점부터 내 몸에 잠복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 또한 카디건스의 <Carnival>, <Lovefool>, <Celia Inside>은 같은 노래를 즐겨 들었고요, 마빈 게이, 레이 찰스 노래는 친구까지 듣게 만들었으니까요.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그 친구가 간혹 야자 시간에 내 소니 MP3를 빌려가 곤란하긴 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본가로 가니 누나가 턴테이블을 샀더군요. 조금 놀랐습니다.  좋아하던 음반이 너무 많았거든요.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누나랑은 많이 보면 1년에 5 정도 보는 사이입니다. 메시지를 해도 취향 따위의 얘기는 전혀  하고요.


어디 그뿐일까요. 형편이 사나워 누나와 같이 쓰던  책꽂이에 있던 유일한 영화 DVD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라는 것이었는데요,  최근  년간 그의 영화뿐 아니라 인터뷰, 에세이까지 빠짐없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전혀 몰랐고요.


그 밖에 좋아하는 브랜드라던가 디자인이라던가 묘하게 겹쳐 내가 언제 이걸 샀나 놀랄 때도 있습니다. 둘이 한 집에서 성장하다 보니 같은 바이러스가 체내 잠복하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굳이 에둘러 표현하겠습니다.


얼마 전, 술 자리에서 누나가 좋냐, 형이 좋냐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내 대답은 윗글로 대신할 수 있겠네요. 미우나 고우나 같은 바이러스를 공유할 만큼의 사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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