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58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58
― '묘생유전'(猫生流轉)도 흐른다 ―
(우리 집 '세 양이' 이야기)
우리 집 양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니, 가족 이야기이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 마리 양이와 함께 살아온 이야기다. 어쩌면 애묘가족 여러분들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10년 전 여름이었다.
비가 잦았고, 담양의 홍수조절지 근처는 흙탕물 냄새로 가득했다.
그날, 아내가 품에 안고 돌아온 것은 홍수조절지에서 떨고 있던 손바닥보다 작은 양이 한 만리였다. 힘없이 꼬물거리는 아이.
이름을 <홍복이>라 지었다.
홍수조절지에서 주어왔고, 우리에게 복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이었다. 이 아이는 빠르게 자랐고, 우리 사랑을 순식간에 독차지 했다. 살짝 눈을 치켜뜨고 바라 보던 모습, 어찌나사랑스러운지 우린 ‘미쓰냥이’라 불렀다.
몇 달 뒤, 거의 죽어가던 또 한 마리가 찾아왔다.
“이 집이라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한 지인이 내민 손에 상처투성이 작고 가여운 생명이 있었다.
사실 한 마리도 벅찼던 우리였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잠시만, 잠시만 살려 보자는 마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 아이는 살아났다.
지독할 만큼 질긴 생명력이었다.
우리는 그를 <길복이>라 불렀다.
길 위에서 왔고, 우리에게 또 하나 복이 되어준 존재.
길복이는 한때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점잖은 중년 양이가 되었다. 움직이는 시간 보다 쉬는 시간이 길고, 간식에는 눈이 돌아가지만 생선에는 무심 하다. 사람 나이로 따지자면 내 또래일까? 길복이도 나처럼 이제 조용한 하루를 좋아한다.
다만 길복이는 여전히 세상이 두렵다. 낯선 인기척에 누구보다 먼저 숨고, 누구보다 조용히 사라 진다.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착하고 순한아이, 한 번도 말썽을 부린 적 없는 고요한 영혼이다.
시간은 흐르고, 또 한 생명이 우리 곁으로 왔다.
3년 전 봄, 뒷집 지붕 위에서 마당에 떨어져 울고있던 두 마리 새끼 양이. 어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홀로 사시는 뒷집 어르신 은 90세가 훨씬 넘어 돌볼 힘이 없으셨다.
결국, 아내가 두 아이들을 안아 들었다.
안타갑게 한 아이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남은 한 아이는 또 살아남았다.
참 질기게도, 생명이란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아내는 이미 두 아이로 벅찼기에 더는 여유가 없다고 했지만, 그 작은 눈망울은 우리 마음을 천천히 그러나 깊이 파고들었다.
그 아이는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집 안을 맘껏 뛰놀며 우리 일상에 따뜻한 혼돈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오기로 운명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 아이를 <동복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홍복-길복-동복> 이 셋 이름을 <홍길동>으로 잇자며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했지만, 모든 결정권이 있는 마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무 인위적이라나...
그리하여 아이의 이름은 <다복이>가
되었다.
복을 다 가진 고양이, 다복이.
'홍복이'는 한때 뚱냥이였다.
그러다 병이 찾아왔고, 몸무게가 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우린 포기하지 않았고, 홍복인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병원비 꽤나 들어 갔다.
'길복이'는 여전히 묵묵하다.
말없이 다가와, 말없이 다가서지 못한 채 돌아서는 아이.
간식엔 눈을 빛내지만, 다른 것엔 무심한 그 아이.
'다복이'는 그 반대다.
뭐든 좋아하고, 뭐든 궁금해하며,
형과 언니를 괴롭히며 집안을 쥬라기공원 '랩터'처럼 날쌔게 뛰고, 유연하게 도망친다.
그런데 길복이와 다복이는 커 갈 수록 거의 똑 같아진다. 희한하게 다복이는 앞 발만 흰 털이 없다. 그것으로 구분한다.
세 마리 '양이' 취향은 제각각이다.
홍복이는 생선을 좋아하고, 길복이는 간식만 좋아하고, 다복이는 모든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이 셋은 다투지 않는다.
서로의 밥그릇에 고개를 들이 밀어도 싸움이 나지 않는다.
다복이가 길복이 밥을 탐내면, 길복이는 조용히 물러선다.
물러남으로서 평화를 지키는 아이들이다.
이러한 것은 가르칠 수 없는 냥이들 고급진 품성이다.
요즘처럼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는 날이면,
세 아이는 한 자리에 포개어 잠을 잔다.
이런 따뜻함이 필요한 건, 비단 양이들 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붕 위에서, 길 위에서 만난 생명들이 이제는 ‘우리 집’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되어 함께 살아 가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 아이들도 이제 우리 진정한 가족이야”
추억의 사진첩을 열면, 처음 만났던 그 초라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남은 것은 오직 따뜻한 시간, 복실복실 살이 오른 사랑의 흔적들뿐이다.
묘생유전(猫生流轉)!
고양이의 삶도,
우리의 삶도,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또 흘러간다.
지금도, 나도, 냥이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세 고양이의 성장 사진들을 함께 올려봅니다."
― 초롱초롱 박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