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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Sep 26. 2023

촌티

벗지 못한 촌티가 반가운 이유

어렸을 때 서울살이를 동경했다. 서울에는 내가 TV로만 보던 것이 있었고, 사람들은 지방에서 온 사람에게 낯선 눈빛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지방에서 왔다 하면 나는 설명할 게 너무 많았다. 내 고향은 어디에 있고, 어떤 지역 특산물로 소개를 해서 빠르게 대화 주제를 넘겨야 했거나, 오해를 줄여야 했다. 이젠 성인이 돼서 꽤나 이런 질문들에 익숙해졌지만, 여러 이유들로 서울 사람들이 부러웠다.


서울 출신의 친구들이 나에게 부러운 점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러다 나의 친한 서울 출신의 친구가 한 말 때문에 순혈(?) 서울사람들을 적당하게 부러워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돌아갈 집, 고향이 있다는 안락함이라 했다. 나는 시골이 너무 싫었던 아이였다. 냄새나고, 위생과는 멀고, 소똥 냄새가 가끔 코를 때리고, 내가 원하는 것들은 거의 부재한 곳이었다. 


그런 부재함이 죽도록 싫었지만, 나는 한 살씩 먹어갈수록 그런 부재함이 감사할 때가 있다. 사람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자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잔뜩 재미난 것이 없어서 더욱 재밌었던 경험, 순식간에 재밌는 것들이 눈앞을 지나가진 않지만, 오래도록 진하게 뇌리에 남을 풍경들. 그런 시공간적 경험은 커서도 어떠한 안락한 삶을 꿈꿀 때 좋은 프로토타입이 되었다. 최근에 조용한 곳들을 찾아 걸어 다니면서 발걸음마다 기쁨을 느끼고, 어딘가 편안함과 안락함을 즉각적으로 느꼈던 이유 중에 나의 시골에서의 산 경험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조용하고 실용적인 것들이 부재한 곳들은 불편이 필수불가결하지만 그 속에 집이 있었고, 분명 평화가 존재했다. 


시골은 더 이상 그냥 냄새나는, 불편을 눈감으며 버텨야 하는 곳만은 아니다. 나에게 안락함을 알려준 곳이다. 더 이상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여전히 벗지 못한 것 같은 촌티가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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