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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Oct 20. 2022

부끄러워도 글을 쓰는 브런치 사람들

글을 우당탕탕 쓴다. 머리에 흘러가는 말들을 까먹을까 봐 재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녹음기를 쓴 적도 있다. 산책을 하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입으로 내뱉고 나중에 적어야겠다는 심산. 하지만 녹음도 어려웠고, 집에 돌아와 다시 꺼내 듣는 것도 어려웠다.


그렇게 문장을 쓰다 보니 내 글에 비문이 많은 편이다. 이따금 누군가 나를 더러 '글 잘 쓰는 애'로 칭해주면 기분은 좋지만 1초도 지나지 않아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앞에 수식어가 빠졌기 때문이다. 일반인 중에서 글을 써본 애. 이 정도가 알맞은 호칭이다.


배움이 짧아 무슨 '-즘(-sm)'이나 '-주의'로 끝나는 단어들을 글에 넣기가 거북스럽다. 나에게 생소한 단어들을 거르고 거르면 쓸 수 있는 게 몇 개 남지 않는다. 그것이 내 어휘의 한계라고 생각이 들 때면 못내 아쉬움이 들다가 다른 방도를 찾아본다.


시집을 읽으면 갈증이 해소된다. 쉬운 단어라도 배치에 따라 고급 문장이 된다. 시나리오의 대가 로버트 맥키가 한 말이 떠오른다. "울타리(한계)가 있어야 벗어나기 위해 창조적인 행동과 반응이 나타납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이 그렇고, 세계관을 구축하는 작가들이 그렇다.


엊그제 청강한 사업 관련 수업에서도 강사님이 비슷한 말을 하셨다. "일이 바빠졌다고 알바를 바로 채용하는 건 좋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상황만 반복될 뿐이죠. 어떻게 하면 시간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첫 번째로 할 일. 그래야 사업이 성장합니다."


좋은 충고들을 듣고 자세를 바로 앉는다. 글을 우당탕탕 쓰는 버릇은 변하지 않겠지만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불과 몇 밀리라도 비좁은 그릇을 넓히고 싶다. 그러다 운이 닿으면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쿡 누르는 문장 하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부끄러움 속에 희망을 품는다.


시집 '그 여름의 끝'



참고

- 김옥진 브런치 '이래저래 뼈맞았다' (https://brunch.co.kr/@observation/128)

- 로버트 맥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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