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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13. 2020

 아직도  함께 하고 싶은 겨울



등굽은 노송이 봄을 기다린다.(사진:이종숙)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온다. 눈이 그야말로 부슬부슬 비처럼 온다. 하늘색이나 땅을 덮은 눈 색이나 똑같아서  하늘인지 땅인지 구분이 안된다. 눈이 많이 올 것 같지만 집안에 하루 종일 있을 수 없어 산책을 나갔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많은 쇼핑센터나 체육관을 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숲으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걸을 시간인데 눈도 오고 날씨가 흐려서 인지 우리 둘만이 고요한 숲 속을 걸어본다. 새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산속의 정적을 깬다. 다들 코로나 때문에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요즘에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숲이 있어 걸을 수 있어 다행이다. 아이들은 그나마도 하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 하지만 신선한 공기는 몸에 좋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활엽수보다 침엽수가 많아 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아서 산책길이 어둡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가 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은 아침부터 온 눈이 하얗게 쌓여있고 한두 명이 걸어간 발자국이 있을 뿐 참으로 조용하다. 몇 백 년 동안 서 있는 나무빛을 보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란다. 곧바로 뻗은 나무가 하늘을 향해 서 있고 골짜기에 있는 나무는 빛이 있는 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삐딱하게 서 있다. 빛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 몸이 비뚤어지는 희생조차  감행하게 되었나 보다. 개울이 넓어 사람들이 건널 수 있게 작은 다리가 몇 개 놓여 있다. 다리 위를 걸어가며 양쪽에 내려오는 개울을 본다. 지금은 물이 얼고 그 위에 눈이 쌓여 물은 보이지 않지만 눈 쌓인 절벽과 계곡의 모습은 지상천국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산책길은 동네길과 연결되어 있어 동네를 구경하며 걸었다. 으리으리한 집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아주 조용하고 뒤뜰도 넓고 정원도 멋지게 꾸며 놓았다. 동네가 오래되어서 집도 오래되어 보이지만 산책길을 옆에 끼고 있어서  절경도 좋고 걸을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이층 집에 뒤뜰에 넓은 수영장이 있는데 겨울이라서 하키장으로 만들었는지 하키 막대기가 옆에 세워져 있다. 옆집은 4층짜리 집이다. 층층이 넓은 베란다가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다. 일층에서 누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불은 환하게 켜져 있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안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을 감추기 위해 불을 켜놓기도 한다. 몇 집을 더 가다 보니 3층 집이 보인다.

유리창이 그렇게 많은 집은 본 적이 없는데 세어보니 층마다 유리창이 8개씩 모두 24개의 유리창이 있다. 집이 환해서 좋겠지만 유지비가 많이 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집은 다른 집 같지 않게 뜰이 없다. 담이 바짝 붙어 있어 답답해 보였는데 앞뜰을 넓게 만들어 예쁘게 꾸며놓아 보기 좋다. 동네가 처음 조성될 때 모두 같이 세운 담들인지 모양과 높이가 다 똑같아서 깨끗해 보인다. 부자 동네라서 그런지 휴지 조각 하나 없이 주위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이런 집에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걷는다. 하지만 말뿐이지 더 이상 집에 대한 욕심을 버린 지 오래다. 아이들이 분가하고 남편과 둘이 사는데 큰집도 화려한 집도 필요 없다.

집이 넓어봤자 할 일만 많을 뿐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젊어서 한때는 넓고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어쩌다가 커다란 집에 사는 친구네 집에 초대받아 가보면 우리 집은 초라해 보여서 더 큰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세월은 나를 이끌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인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 것 같다. 마음을 비울수록 행복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작은 것에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많이 갖고 높이 올라가도 그 나름대로의 힘겨움이 있다. 조금씩 걷다 보니 다시 숲 속으로 연결된 길이 보여 숲으로 향했다. 눈이 쌓인 숲은 환상이다. 큰 나무들은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고 잔잔한 나무들은 큰 나무 옆에서 올망졸망 자라고 있다. 작년 가을에 떨어지지 못한 빨간 열매들은 추운 겨울을 견디며 매달려 있고  낡은 이파리도 봄을 기다리며 추위를 견디며 바람이 불어주는 대로 흔들린다.

눈이 내리던 산길은 어느새 햇빛이 눈부시게 비춘다. 언제 눈이 왔었나 하며 골짜기를 비추고 새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다람쥐들도 나무를 오르내리며 봄눈을 즐긴다. 눈은 오지만 봄은 동네 어귀까지 와 있고 사람들은 봄 맞을 준비로 바쁘다. 친구와 어제 통화를 했는데 남편이 집안에 심은 모종이 손가락만큼 자랐다며 어서 빨리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니 봄이 머지않은 생각 이 들었다. 코로나로 비상이 걸려 무슨 준비라도 해야 하는데 봄타령만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봄이 온다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도 기다려지는 것은 나도 모르겠다.

남편과 오손도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는 산책길은 한없이 행복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함께하는 남편이 고맙다. 무엇을 하던 최대한 맞추어주고 응원해 주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절벽 가까이에는 많은 나무들이 넘어져 있다.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도 있고 누군가가 미리 잘라준 나무도 있다. 이제 봄이 와서 물이 녹으면 그 나무들 사이로  계곡물이 흐를 것이다. 갑자기 눈이 녹아 계곡의 물이 넘치기라도 할 때 쓰러진 나무들은 물길을 천천히 흐르게 한다. 작년 가을에 공사를 하던 곳을 지나다 보니 멋진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넓고 튼튼하며 둥글고 낭만 있게 만들어 놓은 다리에서 보는 경치가 예쁘다.

집에 있기가 너무 답답해서 한 시간만 산책을 하기로 하고 나왔는데 산길이 너무 좋아 따라 걷다 보니 2시간이나 걷게 되었다. 모자와 목도리가 눈으로 젖었다가 활짝 갠 날씨 덕에 다 말랐다. 오지 않는 봄일랑 잠시 잊고 눈 쌓인 숲 속의 데이트에 조촐한  행복을 찾는다. 겨울은 아직 가기 싫다고 하니 떠날 때 보낼지라도 지금은 함께 해야 한다. 아주 가는 게 아닌데도 가기가 싫은가 보다. 불과 몇 개월의 이별인데도 겨울은 고집을 부린다.

아직은 아니라는 겨울...


숲 속에 누군가 지어놓은 나무집이 있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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