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만물은 나름대로의 표정이 있다. 표정을 보며 작가는 글을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비가 쏟아지고 파도가 미친 듯이 밀려오고 바람이 세상을 뒤집을 때는 세상의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다. 자연의 화난 표정이다. 사람을 만나면 표정을 본다. 웃고 울고 화난 표정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알게 된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얼굴에 표정이 나타난다. 그처럼 하늘과 바다 그리고 기후 모두 표정이 있다. 나는 습관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커튼을 열고 하늘을 본다. 어제는 하늘이 빨갛더니 오늘은 잿빛 구름이 흰구름과 줄무늬를 만들어 마치 파도가 치는 것 같이 보인다. 가까이는 굵고 험악한 파도, 멀리는 잔잔한 파도 같은 구름이 선명하게 줄이 그어진 구름을 펼치더니 새털구름을 만든다.
구름 낀 하늘을 보며 오늘은 흐릴 것 같았는데 파란 하늘이 나타나더니 덥기 시작한다. 지난 며칠 추워져서 가을이 오나 보다 생각했는데 인디언 서머가 시작되어서 여름 같다. 인디언 서머에는 가을이 오기 전에 마지막 열기를 대지에 쏟아낸다. 미처 익지 않은 곡물을 마저 영글게 하고 사람들은 가을을 대비한다. 추워지기 전에 텃밭을 정리한다. 누렁 잎을 따주고 뽑아주고 다듬어준다. 집안 청소를 하고 여름옷과 신발을 치우는 정리의 계절로 춥기 전에 여름 동안 미루었던 일을 하며 가을을 맞는다. 인간은 태어나서 지구를 떠나기 전에 수십 년의 준비기간을 제공받은데 미루고 살면 정리를 하지 못한 채 떠날 수도 있다. 어느 날에는 결국 쓰레기가 될 물건들인데 미련을 가지고 산다. 바라보고 쓰지 않을 바엔 버려야 하는데 아직은 용기가 안 난다.
여름 뒤에 가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이 있어 너무 좋다. 가을은 그 어떤 계절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자연이 부른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들은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유혹한다. 생명의 봄이 최고라고 하지만 가을의 매력은 따라갈 수 없다. 어디를 가도 눈이 부시다. 하다못해 떨어진 낙엽조차 가슴을 뛰게 한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살다가 떠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단풍 진 모습을 보면 표현할 언어가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설렌다. 사람도 한해 살고 나무처럼 익어떨어지고 다음 해에 다시 피어나면 좋겠다. 백 년 가까이 사는 인간의 최후는 나무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같다.
추억조차 없어 보이는 희미한 눈으로 쳐다보는 노인의 눈길은 슬프기조차 하다. 평생을 살다 가는 길이 쉽지 않아서 주름진 얼굴에 굽은 어깨는 허무함이 보인다. 살아온 연륜이 보이지만 삶에 지친 모습은 더 이상의 희망도 기력도 없어 보이는 표정이 읽힌다. 아름다운 단풍도 멀리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보면 마르고 퇴색된 모습이다. 나무나 사람이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의 최후는 아름답지 않을지라도 너무나 숭고하다. 잔잔한 바람에도 힘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탄성을 지른다. 가을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듯이 바람도 세차게,따뜻하게, 시원하고 덥게 표현한다. 비와 바람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만 말할 수 없는 피해도 가져다준다.
요 며칠 전 이곳 동부 해변에 허리케인이 와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수많은 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지고 전봇대가 쓰러져 전기가 끊어졌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허리케인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남은일은 복구작업인데 언제 끝날지 막연하여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것처럼 자연도 마찬가지다. 파도가 무섭게 치솟고 바람이 집을 들어 올리며 세상을 뒤집는다. 그럴 때의 표정은 정말 무섭다. 비 오는 모습도 여러 가지다. 이슬비, 보슬비가 있고 소나기와 장마가 있다.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깜깜 해지며 비를 쏟아내고 맑아진다. 싸락눈이 오기도 하고 함박눈이 오면 자연이 하는 대로 피하지 못하고 받아야 한다.
지구가 오염되어 그렇다는데 천재지변은 옛날부터 있었다. 지구가 더워져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섬들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지금 섬에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 살 곳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지구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바다에 사는 동물들은 그들 나름대로 본능으로 살 곳을 찾을 것이다. 오래전,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왔을 때 동물들은 미리 알고 모두 피했다는데 인명피해는 엄청났었다. 인간들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여도 동물들의 본능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일을 모르는 일이 많다.
밤새 안녕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로 세상이 정신없어도 결혼식도 하고 새 생명도 태어난다. 3년 동안 결혼을 준비한 커플의 결혼식날 허리케인이 동네를 휩쓸어서 전기가 없지만 이웃들의 배려로 결혼식을 올리는 뉴스를 보았다. 발전기를 돌리며 결혼식을 준비하며 새로 탄생한 커플을 축복해주는 마음이 너무 아름답다. 힘든 상황에도 웃음으로 진행된 결혼식을 보며 가슴에 온기를 느낀다. 자연이 온갖 심술을 부려도 인간의 의지를 꺽지 못한다. 함께 하는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은 눈부시다. 행복하게 웃으며 포옹하고 춤을 추는 커플의 표정에 행복이 넘친다. 주고받는 표정으로 전해지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