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속에... 가을이 간다

by Chong Sook Lee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던 가을이 이제 피곤하다고 땅 위에 드러눕는다. 낙엽을 발로 밟아본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좋다. 곱게 피었다가 아름답게 가는 가을을 닮고 싶다. 미련 없이 가는 가을이 가면 겨울이 와서 하얀 눈으로 세상을 덮어준다. 더럽고 흉한 모습들은 눈 속에 파묻히고 깨끗한 순백의 세상이 된다.


쭈글쭈글하게 낡은 누런 나뭇잎들이 바람 따라 흔들린다. 평생 동안 열심히 살아온 노인들의 모습이다. 요즘에는 보톡스가 있어 주름을 펴주어 나이가 들어도 얼굴에 주름이 없지만 나이는 되돌릴 수 없다. 수십 년을 넘게 버티며 살아온 나무에 죽은 가지가 몇 개 더 늘었다. 죽은 가지를 잘라주면 몇 가지 남지 않기에 봄에 싹을 피우는 가지는 그대로 두고 있지만 세월을 따라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죽어가는 나무이지만 완전히 죽기 전까지는 차마 싹 자를 수 없다.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보면 사시사철 우리 집을 지키고 서있는 자작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33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는 가늘가늘한 어린 나무였는데 세월 따라 노년을 맞는다. 봄마다 새파란 새싹으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여름에는 긴긴 하루 동안 햇볕을 가려주고 가을에는 예쁘게 단풍 드는 모습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나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서서 겨울을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담요 삼아 봄을 기다린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오색 찬란한 전구가 달린 전깃줄을 몸에 감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밤길을 밝혀주는 나무다. 하늘은 온통 회색이다. 겨울눈이 들어 있는지 가을비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땅에 사는 모든 만물은 하늘이 주는 대로 받는다.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눈보다 낫다. 캘거리에는 첫눈이 내려서 온통 하얗다. 가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완벽한 겨울의 모습이 되었다. '지난가을은 아름다웠다'는 과거가 되었다. 이제는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지내야 한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은 오지 않았어도 가을로 돌아갈 수 없다.


겨울은 봄을 만나기 위한 희망의 다리 같은 존재다. 겨울이 없으면 봄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봄을 그리워할 이유도 없다. 겨울이 빨리 왔다가야 봄도 오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가면 우리가 살던 세상이 아니고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힘든 고난의 시간을 참고 견디면 행복의 다리가 보인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봄은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다리는 시간들은 다리를 건너는 힘이 된다.


지난해의 모습은 없어도 우리의 희망은 봄을 향한다. 새들이 물어다 놓은 솔방울과 바람에 날아온 낙엽들이 쌓여 있다. 눈이 오기 전에 깨끗이 청소를 해주고 나니 남편은 밀린 숙제를 끝낸 것 같아 좋다고 한다. 사과나무와 앵두나무도 노랗게 단풍이 들어 다소곳이 계절의 순환을 받아들인다.


엊그제 산책을 하다 보니 수많은 낙엽들이 계곡에 빠져서 계곡물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아주 편안해 보여 그 옆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고 걸어갔다. 한해를 살아온 저마다의 색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미련이 없다는 듯 평화롭게 흘러가서 나도 모르게 잘 가라 하며 손을 흔들었던 생각이 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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