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함께 찾아온 겨울

by Chong Sook Lee



커튼 뒤로 보이는 창밖이 환하다. 아직 해가 뜰 시간이 아닌데 너무 밝아서 커튼을 열어보니 밤새 눈이 하얗게 왔다. 조금이 아니고 많이 왔다. 지붕과 나무 위에 함박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이 설국을 만들었다. 정말 겨울이 왔다. 엊그제만 해도 가을이 버티고 자리를 지켰는데 결국 겨울이 자리를 빼앗고 가을은 떠났다. 가고 싶지 않아 버티고 있던 가을은 꼼짝없이 눈 아래에 갇히고 말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낙엽이 뒹구는 거리는 참으로 쓸쓸했는데 하얀 눈이 잠재웠다.


가을의 심란하던 끝자락은 눈 속에 파묻히고 눈의 세상이 되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봄은 얼굴만 살짝 보여주고 가버리고, 여름과 가을이 정답게 사랑을 주고받았다.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좋아 믿기지 않는 가을을 보냈는데 겨울은 잊지 않고 눈과 함께 왔다. 겨울이 오는 것이 싫어도 겨울 없이 봄은 오지 않는다. 싫어도, 좋아도 겨울과 함께 보내야만 따스한 봄을 맞을 수 있다. 밤새 눈이 왔는데도 여전히 내린다.


남편과 함께 눈을 치우고 들어 왔는데 금방 또 쌓여 남편은 또 나가서 눈을 치운다. 이렇게 하루 종일 눈이 오는 날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번 이상은 눈을 치워야 한다.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물었는데 눈이 많이 와서 좋은데 첫눈이 오는 날은 교통사고가 많다. 오늘 하루 만에 400여 건의 추돌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뜬다. 앞과 뒤로 찌그러진 차들이 정비공장에 줄지어 서있다.


여름 동안 사람들이 눈 위에서 운전하는 것을 잊은 듯이 사고가 많이 났다. 눈이 막 온 아침에는 길이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눈이 녹으며 빙판이 생겨 미끄러워서 생긴 사고가 많다. 눈이 많이 오고 겨울이 길은 이곳은 해마다 눈과의 씨름을 해야 한다. 거리에 눈을 치울 때 차를 치우지 않으면 청소를 할 수 없어 벌금을 두배 이상으로 올린다고 한다. 차고가 없고 차가 한대 이상 있는 사람은 길거리에 주차를 하는데 자칫 시간을 놓치거나 옮기는 것을 잊으면 벌금 폭탄을 맞는다.


세월 따라 인구도 많아지고 지켜야 할 규칙도 까다로워진다. 이민 초기에는 차문을 잠그지 않고 시동을 걸어 놔도 아무도 차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출입문을 닫지 않고 다녀도 별 걱정 없던 시절인데 이제는 앞뒤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알람까지 연결해 놓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인구가 늘고 인심이 좋아지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 자꾸만 오르는 물가와 실업률 증가에 사람들은 어찌할 바 모른다.


해마다 푸드 뱅크에 도네이션 하는 사람들은 줄고 음식이 필요한 사람은 늘어나서 푸드 뱅크를 운영하는 단체는 울상을 짓는다. 살기가 힘드는데 도네이션을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학교나 공공장소에 커다란 상자를 준비하여 도네이션을 받지만 옛날 같지 않아 걱정을 한다. 특히나 올해는 경제난이 심해져 한 푼이라도 아끼며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빚은 많아지고 돈은 벌기 힘들어진다. 경기가 좋아서 부동산 붐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온 경기침체로 이자가 오르고 물가가 비싸지는 상황으로 사람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세월이 가면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더욱 힘들어져 간다. 눈이 와서 사고가 나고 서민들은 걱정이 앞서지만 하얀 설국을 보니 기분이 좋다. 세상이 눈으로 덮여서 깨끗하다. 바람 따라 뒹굴어 다니는 낙엽이나 휴지조각이 눈에 거슬렸는데 이젠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 위를 걸어본다. 사박사박 발자국 소리가 정겹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은 어딘가로 내려앉는다. 둥그런 곳과 뾰족한 곳 그리고 네모난 곳에도 살며시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전나무 가지에는 거북이 모습을 하고 소나무 가지 위에는 예쁜 강아지 모습으로 앉아있다. 바람결에 떨어질 때는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햇살이 내리쬐면 살며시 녹아내린다. 뒤뜰에 서있는 마가목 나무 열매는 빨간 얼굴에 하얀 고깔을 쓰고 있다. 미련 많은 사과나무는 가을이 되어도 이파리를 끼고 있더니 이파리 하나하나에 눈을 안고 서 있는 모습이 예쁘다.


해마다 11월에 오늘처럼 한바탕씩 눈 폭탄을 내려놓고 겁을 주는 하늘은 여전히 내려놓을 눈이 있는지 그치지 않는다. 한 번도 눈을 치지 않은 것처럼 많은 눈이 쌓여있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눈 치우는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기계로 치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다. 기계로 치우면 좋지만 기계가 무거워 작동하기 힘들다.


노인들이 틈틈이 나가서 눈을 치우는 이유를 알아 간다. 알게 모르게 세월을 따라가는 육신은 자연을 받아들이며 순종한다. 소 같던 기운은 어디로 가고 일이 무서운 세월을 산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지붕 위에 쌓여있는 눈이 바람 따라 천천히 날아다니며 겨울이 왔다고 신고를 한다.


(사진:이종숙)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