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하는 오후

by Chong Sook Lee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는 건 아닙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걸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나와서

가는 날까지 가야 하기에

걸어가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날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달려왔는데

원하는 것은 자꾸 도망갑니다

싫은 것을 피하려 하는데

자꾸만

내 앞을 가로막습니다


어디로 갈지

보이는 것 같았는데

세월이 앞장을 섭니다

좋은 것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이

살다 보니 별거 아닙니다


기대 없

욕심 없이 살면

실망하지 않고

높이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너무 많으면 비워야 합니다

받을 때가 있고

주어야 할 때가 있고

빌려주고 못 받을 때도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

오래된 것은 버려야 하고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려고

달려온 날들은

허탈한 마음만 가져다줍니다

하늘에 별을 세지 않고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

아름다움이 찾아오고

햇살이 보이지 않아도

구름 뒤에 있다고 믿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한낮 중천에 떠있는

하얀 반달은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고

가야 할 시간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

급하게 간다고

일찍 도착하는 게 아니고

천천히 간다고

도중에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불어 방황하며

비에 젖을 때가 있고

햇살이 눈이 부셔서

눈을 감을 때가 있습니다

좋고 그름이 없고

완벽한 행과 불행이 없고

미완성의 삶 속에

완성을 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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