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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26. 2020

오늘보다 나은  내일 이기를...

희망의 길을 따라가 봅니다.(사진:이종숙)


눈이 온 숲은 상쾌하다. 외출을 자제하지만 집에만 있으면 다리에 힘도 빠지고 축 쳐지는 기분이 들어 밖으로 나와서 숲을 걷는다. 주차장에 몇 대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걸어가는 길에 한두 사람 오며 가며 만난다. 더 많이, 더 빨리 확산되는 전염병으로 이제는 산책길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한다. 조용한 산책길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면 반가워 인사도 하고 간단한 대화도 했는데 지금은 다들 마주치는 사람들을 무서워한다. 며칠 전 꽁꽁 얼었던 계곡이 다 녹아서 물이 흐른다. 군데군데 얼음이 물을 따라 흘러가고 내려오는 물은 콸콸 세게 흐르는 모습이 얼마 안 있어 숲 속에 쌓인 눈이 다 녹을 것 같다.

계곡물을 따라 걷다 보니 오솔길이 보인다. 아무도 걷지 않은 산길에 토끼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 본다. 사람들의 소리도 멀어지고 사람들을 피해야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 없다. 남편과 나만의 산길을 따라 걸으며 처음 걷는 길에 설렘으로 가벼운 흥분을 느낀다. 이곳으로 가면 어디로 가는 걸까? 알지 못하는 길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앞으로 난 길은 끊이지 않고 계속 나 있다.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다. 구불구불한 길이 있고 앞으로 쭈욱 곧은길이 있다. 지팡이에 매달은 방울이 숲의 정적을 깬다. 조용한 숲은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만 있다. 아무도 왔다 사람이 없다 했더니  앞에 찍힌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보인다. 무스의 발자국처럼 엄청 크다. 가다 보니 살쾡이의 발자국도 보인다. 어젯밤에 야생동물의 봄맞이 외출이 있었나 보다.

봄이 겨울을 녹이고 흐른다.(사진:이종숙)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절벽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숲은 아름다운 꿈의 나라다. 숲과 숲 사이에 계곡물이  흐르고 나무들은 하늘과 맞닿아 팔을 뻗치고 서 있다. 환상의 모습에 아무도 없는 무서운 낭떠러지 꼭대기에 서 있는 것조차 잊고 사방을 둘러본다. 세상은 발품을 팔은 만큼 보인다고 한다. 서로를 피하려고 사회적 거리를 따지기 싫어 아무도 없는 곳을 오니 이처럼 기막힌 설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숲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있다. 오르고 내려가며 갈길을 찾아간다. 절벽 위로 난 길이 순탄치 않아 힘들기도 하고 혹시나 야생동물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한없이 펼쳐진 숲 속을 걸어 오르며 미지의 세계에 푹 빠져든다.

한참을 올라가니 주택가와 연결된 길이 보인다. 커다란 주택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 엇을 하여 돈을 벌어 이렇게 큰집에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들만 있지 사람들의  그림자도 안 보이는 동네를 지나 남편과 나는 다시 숲으로 난 길로 들어섰다. 입구에 안내판이 있어 그 길을 따라 내려 가본다. 나무들이 빼곡히 서있고 하얀 눈이 숲을 덮었다. 건너편 골짜기에서 다람쥐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더니 무엇이 그리 바쁜지 우리 앞을 지나 반대편 쪽으로 줄 행량을 친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나는데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아보니 죽은 나무 뒤편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찍어대며 벌레를 잡아먹느라 바쁘다.

햇살이 온 숲을 비추고 바람은 나무 위에 쌓여있던 눈을 털어낸다. 눈은 아주 미세한 하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져 날아간다. 눈부신 햇빛이 사방을 비춘다. 크고 작은 나무들과 짐승들이 상생하고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하나가 되어 상부상조하며 산다. 평화로움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저 서 있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최선을 다해 생존한다. 누구를 원망 하지도 손가락질도 하지 않는다. 때가 되어 기운이 없으면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대고 조용히 생을 마친다. 씨가 떨어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어감은 인간의 삶을 닮았다. 세월 따라 자연히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 걸어가는 산책길 옆의 숲에 서 있는 나무들은 까맣게 타 있다. 언젠가의 산불로 탄 듯한데 여전히 죽지 않고 버티고 서 있다.

숲 속의 작은 다리에서 쉬어봅니다.(사진:이종숙)



새로 눈이 온 산길은 참으로 신선하다. 숨을 쉴 때마다 신선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없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간다. 계곡의 물은 점점 더 녹아 흐른다. 다리 위를 걸으며 불과 며칠 전 만해도 꽁꽁 얼었던 계곡이 상상이 안된다. 머지않아 봄은 허물을 벗고 파랗게 살아날 것이다. 죽은듯한 지금의 모습은 사라지고 생명과 환희의 숲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무섭게 확산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무참하게 죽어가는 힘없는 인간들의 아까운 생명은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 참혹한 현실이다. 겨울이 봄에 밀려 자취를 감추듯이 세균이 종식될 것이다. 머지않아 깰 것 같지 않던 악몽에서 깨어나 우리의 잃었던 소소한 일상을 찾아 행복을 누릴 것이다.

사람을 피해 산길로 접어든 지 2시간 반의 시간이 지났다. 세상은  점점  문을 닫고 직장을 잃고 웃음이 사라지지만  숲 속은 여전히 숲의 나날을 지탱한다. 오가는 사람들은 한쪽으로 서서 마주치지 않게 거리를 두고 질서를 지킨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한다. 무심한 계절은 오고 가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작아져 간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해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다. 누런색의 깎아지른 절벽은 흐르는 계곡물에 첨벙첨벙 흙을 떨어뜨리고 있다. 전염병으로 우울해진 답답한 마음을 풀고 숲을 나선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날이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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