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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29. 2020

지금부터... 뭐라도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냥 이대로 손을 놓고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없다. 청소를 하던 정리를 하던 아니면 공부를 하던 그중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하루하루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게으름을 피운 게 벌써 3 달이다. 연말연시에 애들이 다녀 가고 난 뒤에 며칠 쉬고 바로 여행을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쉬면서 감기가 들어 한보름 정도 감기와 씨름하다 보니 1월은 갔다. 2월은 눈이 자주 와서 집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혀 빈둥거리며 놀았다. 그러던 중 한국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고 뉴스를 들으며 마음이 편하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또 그냥  2월 한 달을 보냈다. 무엇을 하고 싶지도, 하려 들지도 않으며 하루를 지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3월이 되어 기다리는 봄은 안 오고 눈도 자주 오고 이곳에도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발이 묶였다. 문을 닫고 집안에서 살게 되었다. 노인들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니까 아이들은 매일 점검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장을 봐야 하는지 모든 것을 궁금해한다.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애들도 불안한가 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도 알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아는데 무조건 하지 말란다.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위험하니 하지 말고 시장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장도 봐준단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사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새삼스럽다. 그래도 애들이 철이 들어 생각해 주는 것이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장이야 집에 있는 것들 차근차근 꺼내먹으며 살면 되고 정 없으면 고추장과 김치만 있으면 밥이나 해서 먹으면 된다.  한국 사람들이야 밑반찬도 많이 있고 이것저것 넣어서 찌개나 국을 끓여 먹으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사재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난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신경도 별로 안 쓰고 걱정도 하지 않는 우리가 걱정이 되는지 애들은 심각한 상황이라며 정신 차리라고 하지만 왠지 나는 설마 내가 굶으랴 하는 생각이 앞선다. 아직은 이른 시기이지만 한국은 조금씩 진정되어 간다. 이곳은 시작된 지 3주가 되었으니 2달만 버티면 된다. 하루하루 조여오긴 하지만 우리 같은 노인들은 그날이 그날일 뿐이다. 늘 그래 왔듯이 하루하루 조용히 심심하게 보내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 다.

전염병이 돌아 불안하고 젊은 사람들은 일도 못하고 애들과 집에서 일을 하며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필요할 때마다 손주들을 봐주고 애들이 밥해먹기 싫을 때 밥을 해서 같이 먹고 반찬도 필요할 때 만들어 주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못한다. 각자 다들 알아서 하니까 우리는  그냥 집에만 있으면 된 다. 우리가 건강한 것이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니까 그저 잘 자고 잘 먹고 어디 아프지 않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더 꼼짝하고 싶지 않다. 걸음도 살살 걷고 행동도 느려진다. 어느새 이렇게 늙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늙은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며 무엇이라도 해 보려고 하면 머리도 몸도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신경 쓰면 눈이 희미해지고 머리도 아프다. 몸을 평소보다 조금이라 도 더 움직이면 금방 표시가 나고 여기저기 아프다.

허리도, 어깨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다. 왜 이렇게 아픈가 하며 생각해보면 무언가 무리를 해서 그렇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엄두가 안나기도 하고 하기도 싫어졌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면 안 하고 지나간다.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없고 또 하고 어디라도 아프면 육신이 피곤하니까 안 하고 넘긴다. 이제 겨울도 가고 봄도 오는데 할 일을 찾기는 쉽다. 당장에 겨울옷도 집어넣고 이불 빨래도 해야 한다. 겨우내 쌓여있던 눈이 하루가 다르게 녹아가는데 바깥일도 태산이다. 날은 길어지고 일할 시간도 길어진다. 하루하루 나이는 먹고 기운은 떨어지는데 미루지 말아야 한다. 생각은 그런데 몸은 자꾸 앉을자리만 찾고 만사가 다 귀찮다. 그래도 머리는 무언가를 하라고 한다.

찾아보면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오늘부터 또다시 며칠간 눈이 오고 추워진다는 일기예보다. 나가 봤자 숲 속에 가서 산책을 하는 것인데 그나마도 매일 들려오는 뉴스가 발걸음을 붙잡아 집안에서 서성이게 한다. 걷는 사람도 몇 사람밖에 없는 숲 속에서 전염될 리는 없을 텐데 괜히 마음이 찜찜하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느는 것은 잠과 몸무게뿐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동네 한 바퀴 돌고 왔는데 벌써 기운이 없음을 느꼈다. 바람도 쐬고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수다도 떨고 하던 때가 언제 오른 지 봄보다 더 기다려진다. 계절이야 빠르던 늦던  하고 싶은 대로 순환하지만 이런 메마르고 황당한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전염병에 대한 뉴스도, 글도 없었으면 좋겠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길에는 차들이 가득했고 관광지나 축제에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었다. 식당이나 극장이나 시장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비행기와 배를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며 세계가 하나가 되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살아왔다. 세상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우리는 부러울 것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염병으로 이렇게 되었다. 세상은 다시 100년 전의 세상으로 되돌아 간 듯 길거리에는 차도 없고 빌딩은 굳게 닫혀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집에서 조용히 살며 사다 놓은 물건들을 하나씩 빼어 먹고, 쓰며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어 간다.

강제적으로 하게 된 이 상황이 오래 계속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하면 정말 무섭다. 무서운 일이 생기기 전에 어서 빨리 전염병으로부터 해방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모든 것을 놓아 버렸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며 하루하루 간신히 넘어간다. 아슬아슬한 현실이 숨이 막힌다. 그래도 희망의 을 놓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한다. 대단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금방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우리의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 서먹서먹하지 않게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청소도 정리도 다 요령이 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는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다 잊어버리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지금부터 뭐라도 해야 한다.


봄을 맞이하는 계곡물이 녹아 흐른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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