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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세월

by Chong Sook Lee


이웃에 온 봄과 놀며

봄맞이하느라

겨울이 간 줄 알았는데

집에 오니

겨울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구 한쪽에는

꽃이 피고 지는데

이곳엔 눈이 내리고

하늘은

봄처럼 따스해도

바람은 아직

겨울을 품고 있습니다


남쪽 땅 양지바른 곳에

연초록 원추리가

눈부신 봄을 알리

강남 갔던 기러기떼

줄지어 날아오는데

심심한 하늘은

하릴없이 눈발을 뿌려도

오는 봄은 막을 수 없습니다


늦은 오후가 되어도

해는 중천에 서서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바람은 자고

해는 길어지고

앞뜰 소나무 아래에

잠자던 토끼가

길게 기지개를 켭니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잔설 위에

뽀얀 먼지가 쌓여

하얗던 눈이 회색이 되

겨울은 어느 날

땅속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죽은 듯이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앞뜰의 고목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바람 따라 흔들리고

봄이 오는 날

새 옷 입을 기쁨에

하늘을 향해 양쪽 팔을

힘차게 흔듭니다


아직 보이지 않아도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봄

먼저 봄이 온 곳은

봄이 떠날 채비를 하고

겨울이 머무는 곳에는

봄이 옵니다


계절은 공평하게

세상을 다닙니다

망은 희망을 가져오고

체념은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하고

세월은 길목에서

춤을 춥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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