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간다. 약속하지 않아도 숲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봄이 온 줄 알고 가벼운 차림으로 찾은 숲은 아직도 겨울을 고집하고 있다. 산책길은 빙판이 져서 미끌미끌하다. 길이 다 녹았으려니 생각하고 아이젠을 하지 않고 왔더니 미끄러워서 걸을 수가 없다. 미끄러워서 허리를 구부리고 살살 걸어본다. 적어도 사람들이 걷는 산책로는 눈이 녹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숲은 아직도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
계곡의 물은 천천히 녹고 있어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정답게 들리고 새들은 봄이 오고 있다고 여기저기서 노래하느라고 바쁘다. 다람쥐도 봄 준비에 바쁘다. 오랜만에 왔어도 반겨주는 숲이 있어 행복하다. 아직은 눈이 쌓여 있어 푸르름은 없어도 물이 오른 나무들이 기지개를 켠다. 딸이 사는 빅토리아에는 온갖 꽃이 피고 지는데 겨울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에드먼턴은 봄은 꿈도 못 꾼다. 이미 딸네집에서 봄을 맞았으니 봄이 조금 늦게 와도 괜찮다. 다음 달에 봄이 오면 그때 봄을 만나면 된다.
올해는 봄을 두 번 맞는 행운의 해가 되니 무엇을 더 바랄 수 있나. 그저 고맙기만 하다. 감사한 만큼 행복하다는데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 딸이 임신했다는 좋은 소식을 듣고 기쁘면서도 노산이기에 출산 때까지 노심초사 걱정을 했는데 예쁘고 건강한 손자를 선물로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겨울이 안 가도 좋고 봄이 늦게 와도 좋다. 아이들 건강하고 잘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부모님의 심정을 새삼 느낀다.
봄이 늦게 오면 나무들이 더 많은 수분을 마시고 더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나무들이 아직은 가만히 있지만 어느 날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을 알기에 기다린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올 때가 되면 오고 갈 때가 되면 간다. 인간의 계산은 모른 체하고 할 일을 하는 자연이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이유가 있다. 갑자기 춥거나 더우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것을 알고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며 계절이 온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여러 가지다. 겨울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추워도 봄옷을 입는 사람도 있다. 숲은 아직 눈이 쌓여 있는데 쇼핑센터에 가보면 미니 스커트와 민소매를 입은 사람도 눈에 뜨인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낮시간은 그런대로 견딜만하여 차 안에서는 오히려 더워 창문을 열기도 한다. 며칠 전 친구가 고추모종을 가져다주었다. 어서 빨리 봄이 와서 텃밭에 옮겨 심고 싶은데 아직 멀었다. 괜히 서둘러 내놓았다가는 얼어 죽는다.
친구가 아기 다루듯이 애지중지 키워준 모종인데 잘 데리고 있다가 밭에 심어 맛있는 고추를 따먹어야 한다. 마트에 가면 싱싱한 채소가 있지만 값도 비싸고 뒤뜰에 있는 텃밭에 야채들을 심으면 유기농이라 안심을 할 수 있다. 머지않아 이곳 숲에도 산나물이 나온다. 6월 초에 참나물과 취나물이 나오면 한철은 밥상이 푸짐하다.
숲을 걸으며 산나물이 자라는 곳을 지나치면서 산나물 뜯을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작년 이맘때 딸네집을 방문했을 때 근처 숲 속에서 고사리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지금도 그때가 생각난다. 조금 뜯어서 삶아서 물에 담갔다가 물을 빼고 얼려놓고 왔다. 딸이 육개장을 끓일 때 조금씩 넣어 끓였는데 너무 맛있다는 말을 했는데 올해는 못 가니까 이곳 숲에서 놀아야 한다.
눈 쌓인 숲을 바라보며 산나물 뜯을 생각을 하니 금방이라도 봄이 온 것 같다. 한 고개 넘어오니 동네로 나가는 길이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걷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오늘은 돌아서야 한다. 동네길은 그나마 눈이 많이 녹아 걸을만하다. 나무에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무언가 찍어 먹는 모습이 보이고 남쪽에서 날아온 캐나다 구스 한쌍이 잔디 위에 앉아 놀고 있다.
산책로 입구에 있는 아들네 집 앞에 세워놓은 차가 보인다. 오늘은 이만 집에 가고 다음에는 아이젠을 끼고 와서 오래 걸어야겠다. 바람이 분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집으로 가는 발길에 행복이 같이 가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