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뜰 코너에 있는 앉은뱅이 소나무가 죽어 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소나무가 누렇게 퇴색되어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인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가뭄이 길어 죽는지 아니면 병충해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와 함께한 세월만 해도 올해로 34년이고 우리가 이사 올 때부터 있었으니까 나이로 치면 반백살이 되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킨 나무다. 해마다 가지치기를 해주고 봄이 되면 파란 싹이 나서 봄이 온 것을 알려주던 나무인데 갑자기 병색이 완연한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언젠가 죽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루하루 누렇게 변해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어떻게 살릴 방법이 있나 해서 인터넷을 찾아봐도 특별한 방법이 없다 고 한다. 나무 하나 죽는다고 어떻게 돠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우리 집을 지키고 서 있던 나무이기 때문에 마음이 자꾸 간다. 몇 년 전에 전나무 하나가 병들어 죽어서 사람을 시켜 나무를 제거했을 때 그 자리가 너무 휑 하던 생각이 난다. 이제는 세월이 지나 그 자리에는 다른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 베어 버린 나무의 흔적은 없어졌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없던 것이 생겨나고 있던 것은 사라져 가며 세상은 돌고 돈다. 지금 살아있는 것들은 죽음을 향해 가고 없는 것들은 언젠가 세상에 나와 세상을 이끌어 간다. 오늘 살아있어도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아프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건강 진단을 받으며 암이 발견되기도 하고 커다란 암덩어리가 있는데 백세 가까이 사는 사람도 있다. 아프다고 일찍 가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다고 장수한다고 할 수도 없다. 어디서 날아온 국화꽃이 장미꽃 옆에 자라고 있다. 봄에 보지 못한 풀 같은 것이 있어 혹시나 하고 놔두었더니 예쁘게 주홍색 꽃이 하나 둘 피어난다. 세상에 이유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피어난 꽃들도 모두 이유가 있다. 들꽃들이 바람 따라 날아와서 자리 잡고 피어나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이곳에 오래전에 이민 온 우리도 들꽃들과 다름이 없다. 비바람 눈보라를 다 견디고 살아온 삶이 저물어 간다. 열심히 살아서 연금을 타며 이제는 나라가 먹여주고 재워준다. 처음 몇 년 동안은 고국이 그리워서 많이 울었는데 이제는 고국은 내가 살던 곳이 아니고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한국에 가면 부모형제를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게 놀고 돌아오는 이곳이 내 집이고 내 나라가 되었다. 오래전, 살기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한국에 돌아가서 살고 싶은 생각도 한 적이 있었지만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생활이 어려웠어도 이곳에 뿌리를 내려 살아온 세월이 길다 보니 이제는 이곳 사람이 되어 산다. 오히려 어쩌다 한국에 가면 어리둥절하고 어색하여 남의 나라 같은 생각이 든다. 나무가 뿌리를 내려 몇십 년, 몇백 년 자리를 지킨다. 어쩌다 우리 집에 인연이 되어. 우리 집 뜰을 지키며 살던 소나무가 누렇게 된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다. 작년에 어디서 온 작은 나무 가 소나무 옆에서 자라서 좋아했는데 소나무가 죽을 줄 알고 왔나 보다. 소나무가 죽어도 어쩔 수 없지만 살 거면 살 것이고 죽을 것이면 어떻게 해도 죽을 것이다. 얼마 전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고 너무 좋아했는데 아기 백일도 되기 전에 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 모든 것 들은 나름대로의 시간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는 것 같다. 오래 있고 싶다고 오래 있을 수 없고 빨리 가고 싶다고 갈 수도 없다. 순서가 있고 차례가 있는 것이다. 봄에 눈이 와서 새싹이 얼어 죽어도 여전히 봄은 다시 찾아오고, 추운 겨울에도 필 꽃은 핀다. 모든 것들은 때가 있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이제부터는 푸르른 소나무대신에 누런 소나무를 보며 살아야 한다. 겨울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고, 여름에는 토끼가 그늘에서 잠을 자던 소나무가 힘든 시간을 이겨 내고 살아나기를 바라본다. 아직도 둥굴레는 피고 지는데 소나무는 갈 차비를 한다. 소나무야! 죽지 말고 기운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