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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15. 2020

쉬어가는 안식년에...  나를 만난다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사진:이종숙)



소중한 일상을 빼앗겼다고 화를 냈다. 꼼짝 못 하고 집에만 갇혀있다고 억울해했다. 친구들도 못 만나고 쇼핑도 못 가고 아이들도 못 보고 여행도 못하고 집에 만 있으라고 해서 신경질이 났다. 그렇다고 매일 짜증만 내며 살 수는 없다. 집에서 청소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며 조용히 살아보니 그리 나쁘지 않다. 새로운 일상이 생겼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데 일상이 변해도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몇십 년 동안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일도 안 하고 까다로운 손님들 비위도 맞출 필요도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게를 열을 필요도 없고 허리가 휘도록 힘들게 노동을 할 필요도 없다.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이 하루하루 할 일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한 개가 끝나면 또 다른 것을 하고 틈틈이 손님이 들어오면 음식을 만들고 떨어진 재료가 있으면 장도 수시로 봐야 한다. 어쩌다 떨어진 것이 있어서 다음에 사려고 미루면 손님이 알기라도 한 듯  없는 것을 시킨다.

 청소도 내일로  미루다 보면 순식 간에  먼지가 쌓인다.  장보고  준비하고 음식 만들고 또 청소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잠시도 쉬지 못한 채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간다. 그런 세월이 몇십 년 동안 계속되다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하니 그동안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며 잠시도 쉬게 되지 않았다. 갑자기 쉬면 몸이 놀랜다고 운동을 하러 다니기 시작하고 틈틈이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다녔다. 일만 하지 않았지 여전히 바쁘게 활동하며 정작 내가 원하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그런 생활은 못했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게 되면서 꼼짝을 못 하게 되니 나는 나의 일상을 빼앗겼다고 억울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에 짜증을  낸다. 왜 나는 심심해할까? 이게 바로 평생을 원했던 삶이 아니던가? 얼마나 좋은 퇴직 생활인가?

이제야 내가 원하던  일상을 찾았다. 집안에서 할 일을 찾아서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은 영상으로 만나면 된다. 식당에 가지 못해도 배달음식이 있고  카페에 가지 못해도 집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면 된다. 쇼핑을 못 간다고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 당장에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옷장을 뒤져서 철에 따라 입으면 된다.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니 있는 것 찾아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으면 된다. 장을 자주 안 보니 잔뜩 사다 놓고 썩혀 버리지 않아 좋다. 나가지 않고도 할 일은 수도 없이 많다. 아무것도 안 하다가 내가 갑자기 병이라도 걸려 몸져누우면 뒷감당을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 찾아보니 할 일 천지다. 나갈 수 없는 것만 생각하고 바깥만 쳐다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봄이 아직 안 보인다고 봄이 안 온 것은 아니다. 벌써 4월도 중순이다. 겨울이 안 간다고 12월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하루를 미루면 그 하루가 나에게서 떠나가지만 할 일은 두배가 되고 언젠가는 손을 쓸 수 없이 부풀어 간다. 쓰레기도 매주 와서 가져가는데 버리는 게 없는 요즘엔 별로 내놓을 것이 없는데도 매달 쓰레기 값은 여전히 나간다. 해마다 모든 것들이 인상되는데 언젠가는 쓰레기 값도 오르고 여러 가지 새로운 제약도 생길 것이다. 버릴 것도 제때제때 버리지 않으면 나중에는 커다란 짐이 된다. 예쁘다고 사들인 작은 것들도 모아놓고 보니 커다란 박스로 하나가 된다. 아무도 원치 않는 옛날 물건은 그것 또한 짐이고 쓰레기가 되었다. 내 눈에 좋다고 산 물건들, 버리기가 아깝다고 놓아둔 물건들은 어느 날 나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앞으로 살 날은 짧아지고 내 몸의 기운도 줄어든다.

사람의 일상은 바뀐다. 바쁜 일상이 시시한 일상으로 바뀌고  싫은 것이 좋아지고 떠난 것은 그리워진다. 바쁘면 바쁜 대로 심심하면 심심 한대로 적응하게 된다. 세상만사 좋기만 할 수 없고  다 나쁠 수 없듯이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오늘 좋으면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하기를 기대한다. 기대는 금물이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안될 때 실망한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날씨 같은 인생이다. 비를 안 맞으려고 허허벌판에 서 있는 나무 안으로 들어섰다가 벼락을 맞아 숨지는 경우를 본다. 바람을 피해 빌딩 옆으로 피했다가 빌 딩위에 있던 크레인이 바람에 쓰러져서 죽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욕심은 정말 한도 끝도 없는 모양이다.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되니 말이다.

소소한 현실에 행복을 찾지 못하고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끊임없이 바라고 원하다 보면  우리는 결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길에서 주운 작은 돌멩이에 행복해하고 떨어진 나뭇가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야 행복하다. 오늘 어제가 준 시간이다. 오늘 슬프면 어제의 기쁨으로 살고 오늘이 싫다면 내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야 한다. 좋아도 싫어도 오늘을 살지 않으면 내일도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어느 날 마주해야 할 그 순간도 오늘과 같은 시간이다. 오늘의 태양이 새로 솟아나는 것은 어제의 석양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부족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인간은 노력하고 순종하며 발전해왔다. 실망했다고 그냥 쓰러져 버린다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 속에 순응하는 계절을  닮고 싶다. 때가 되면  오고, 때가 되면 갈 줄 아는 계절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툭하면 화내고 툭하면 주인 행세하지 말고 흘러가는 물이 되어 보고 싶다. 세월이 가져다준 오늘 나는 더 이상 화내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없는 것, 안 되는 것을  원하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자. 여행은 꼭 어디를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여행 온 것처럼 살면 된다. 가까운 곳에 산과들이 있고 강과 호수도 이곳에 있다. 남들은 곳에 여행 오고 싶어 난리인데  이곳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돌이켜보니 너무 많이 만나고 너무 많아 돌아다녔다. 땅도 몇 년에 한 번씩 쉬어가고 과일나무도 해 거리를 하여 몸을 사리는데 올해는 나도 몸을 사려야겠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쉬어가는 안식년을 가져야겠다. 그리하여  오래 만나지 못했던 나와 만나며 자신을 위로하고 힘들었던 심신을 어루만져 주려한다. 안 만나고 안 가고 안 하는 거리두기의 삶이란 지쳐있는 삶을 재정비하고 재충전하는 좋은 기회다. 지쳐있고 메마른 황폐한 삶을 쉬게 하여 더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난과 전쟁과 전염병으로 세상은 많은 것을 배운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과의 만나는 시간으로 만들면 된다. 새롭게 배우면서 더 나은 날들을 계획할 있는 좋은 기회다. 지금껏 번도  안식년을 갖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고 평생 한번 음으로 자신을 위해 안식년을 가져보자. 이제부터 거리를 두고 천천히 살아보자. 그동안 만나지 못한 나를 한번 만나보자. 나의 안식년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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