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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16. 2020

고향 선배의 쓸쓸한 고백




어쩌다 한번씩 전화로 안부를 묻는 선배가 하나 있다. 만나지 못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전화로도 진심이 전해지는 선배이기에 이번에도 부활절에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그는 고향에서부터 잘 아는 선배다.  서울에서 작은 소품 가게를 운영하던 그를  18년 만에 캐나다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가 캐나다로 이민을 온 뒤에 그는 한국에서 청바지 공장을 하시면서 대박이 나서  돈을 많이 벌어 이곳에 와서도 바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커다란 사업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똑똑하여 공부도 잘하고 이민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졸업 후에 좋은 직장도 찾아 일하였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사시는 분들이라 하는 사업도 잘되어 이번에도 또 대박이 났다. 장사가 잘되어 사람이 필요할 때 때마침 그분의 처남을 초청하여 함께 사업을 이끌어 갈 때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본  처남이 하고 싶다 하여  처남 부에게 하던 사업을 팔았다. 그 뒤에 정년퇴직을 할 나이가 안되었지만 십여 년을 밤낮없이 일만 하고 살았기에 쉬고 싶었다. 아이들을 짝을 맞추어 결혼을 시키니 굳이 시내에 살 필요가 없었다. 결혼하여 살고 있는 딸아이에게 큰 집으로 들어와 살게 하려고 집수리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말이 잘 통하는 한국사람과 콘트랙을 맺고 공사를 맡겨 시작하였다. 한두 군데를 근사하게 고쳐놓은 콘트랙터는 재료비를 요구하였다. 이런 식으로 하면 빠른 시간에 맘에 맞게 집을 고칠 것 같아 큰돈을 재료비로 주게 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때 캐나다 으로 6만 불이면 적지 않은 돈이 었는데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어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덜컥 재료비를 줬다. 그 일로 건축 붐이 일던 당시 건축 사기를 당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그는 일인이 되었다. 그렇게 성실하고 착실하던 사람이 돈을 주자 하루 이틀 미루며 일을 하러 오지 않기 시작했다. 전화를 하면 내일 온다, 다음 주에 온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다음 달에 오겠다며 오지를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이 넓은  땅에서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해졌다. 기다리고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찾을 도리가 없었다. 공사가 중단된 집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사람은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다른 사람을 시켜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집수리를 끝내니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평소에 원하던 농사를 짓고 싶어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집과 땅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가롭게 농사나 지으며 살게 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들판을 바라만 해도 마음이 평안했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취미로 하는 삶은 너무나 재미있고 새로웠다. 첫해는 특별히 힘도 안 들고 심어 놓으면 혼자 자라는 마늘농사를 짓기로 했다. 마늘 하나하나를 땅에 심고 흙을 덮어주니 얼마 지나지 않고 파란 싹이 나오며 온통 푸른색으로 땅을 덮으며 마늘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여 힘들었던 지난 세월조차 아름답게 생각하며 사기를 당한 마음의 고통을 잊게 되었고 처음 하게 된 마늘농사는 엄청난 풍작이었다.

한창 마늘이 몸에 좋다는 미디어의 홍보 덕분에 첫 농사부터  그들에게 커다란 수확을 가져다주었다. 행복은 이런 것이라 생각했다. 딸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잘 기르고 아들도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아 잘 기르니 더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 까만은 단지 서운한 것이 있다면 아들 내외가 딸 하나만 낳고 말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제삿밥도 없는 요즘 세상에 아들은 무슨 아들 타령이냐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손자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짐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만날 때마다 손자 타령을 하니 젊은 애들은 당연히 싫어했다. 가까이 살며 자주 다니던 아이들이 장 핑계로 미국으로 이사를 간 뒤로는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들었다.

명절 때나 생일 때 겨우 전화로 인사하고 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몇 년에 한 번 만나도 할 말도 없고 고작 할 얘기라고는 아들 하나 더 낳으라는 말만 하니 아들은 진저리를 쳤다. 오랜만에 와서 처갓집 핑계로 겨우 하룻밤 자고 가는데 서로 의견이 안 맞으니 말다툼을 하게 되어 헤어질 때는 더욱 씁쓸하다. 커다란 꿈을 안고 캐나다까지 와서 대를 이을 자손도 없이 이대로 김 씨 가문이 끝난다 생각을 하니 삶의 아무런 희망도 의욕도 사라졌다. 그동안 참아왔던 이야기를 하며  아들을 낳지 않으려면 이제 내 자식도 아니니 더 이상 손녀 사진도 보내지 말고 오지도 말라는 말을 기어이 하고 말았다. 그 뒤 아들 며느리는 전화도 편지도 없이 남이 되어 버렸다.

무심한 세월은 멋대로 흘러갔다. 하는 일마다 대박이 나는 그는 무엇을 해도 잘 되었다. 마늘 농사로 해마다 많은 돈을 벌며 한쪽으로는 진도 개를 키웠다. 아주 좋은 순종을 분양받아서 넓은 땅에서 키우니 개들도 잘 자라고 번식도 잘하여 여러 마리가 되었다. 지역신문을 통하여 홍보를 하니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사 가지고 갔다. 취미로 시작한 개장사가 커다란 사업이 되어 수입에 큰 몫을 차지하면서 나이도 들고 했으니 마늘 농사는 그만 두기로 했다. 심어놓으면 자라는 마늘이지만 생산부터 판매까지는 일이 너무 많았다. 몸도 늙고 힘도 없어 더 이상 할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딸은 먹고살기에 바빠 연락도 자주 하지 않고 아들은 지난번 그 일이 있은 뒤부터는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부모가 한마디 했다고 발길을 끊는 자식이나 안 낳겠다는 애들에게 못할 말을 한 그나 둘다  잘한 사람은 없지만 너무나 허무하다.  열심히 일하며 평생을 살아온 지금 부족한 것 없이 있는 것 다 있고 행복해야 하는데 왜 이토록 허무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민생활이 30 년이 되어가고 나이가 들어 몸은 늙고 건강도 나빠진 현실이 그냥 너무 허무하다. 열심히 살다 보니 가까운 친구 하나 챙기지 못한 삶이 너무 허무하다. 마음은 있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속이 상한다. 대를 잇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중요하여 아들과도 남이 되어 살아가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 이제 와서 자식과의 화해도 다 무의미하다. 지금껏 찾지 않던 부모 자식 간에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살다가 떠나면 그만이지만 살아온 지난날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몇 년 전부터 파킨슨병으로 조금씩 손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아주 심해졌다. 파킨슨병에 좋다는 약을 여러 가지 써 보았지만 증상이 점점 심해간다. 요즘은 말까지 어눌해지니 사람들 만나는 것도 두려워진다. 아무도 없는 외딴곳에 만나는 사람도 없이 이렇게 살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건강도 안 좋아지고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서 복덕방에 내놓아서  누군가가 사겠다던 계약도 조건이 안 맞아서 허사가 되었다. 전재산을 다 팔아 이곳에서 새 삶을 살아 보겠다고 시작한 삶인데 이 나이가 되니 이 모든 것이 짐이 되었다. 자신의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는 이 나이에 이런 것이 다 소용이 없다. 한때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고 사람들이 주말에 먹을 것을 만들어 싸들고 놀러 오고 며칠씩 휴가를 와서 놀다 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도 동료들도 이웃들도 다 나이 들어 떠나간 이곳에는 세월만 죽이는 노인이 되어버린 자신만 있을 뿐이다. 무엇을 쫓아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들은 서로 물고 뜯는 장난을 하며 잦혀졌다 엎어졌다 한다. 지나간 세월 동안 좋은 일도 많았고 기가 막힌 일도 많았지만 그나마도 없는 이 삭막한 시골에서 커다란 집과 넓은 땅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백세시대에 80이라는 나이는 그리 늙은 것이 아니건만 그는 지쳐간다. 아무런 이유도 없고 의욕도 없다. 목적도 계획도 없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하소연한다. 인생이 과연 무엇인지 허무하기만 하단다.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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